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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플지도 몰라.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플지도 몰라.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5. 22. 13:57

어제도 다른 애니 블로그에 글을 남겼지만

짐순이는 카페알파란 만화를 좋아합니다.

14권짜리 구판을 가지고 있는데도 10권 짜리 신장판을 노리고 있기도 하고

(아! 그건 당연히 해야하는 거지 참..)

거기 나오는 노래들도 좋아합니다.

TC1100가지고 다닐 적엔 화집에 나온 카페 알파 풍경을 바탕화면으로 썼지요.


출처 - 카페알파 화집 이 그림의 저작권은 원작자와 출판사에게 있습니다.


거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구판 기준) 2권에 나옵니다.

주인에게서 택배로 보내져온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대목이 나와요.

이른바 첫 출사인데 맨 처음 자기가 타고 다니는 스쿠터를 찍어보고

주유소 아저씨를 자연스럽게 찍어보려고 하기도 하고

자기가 찍고 싶은 걸 찍어보려고 해요.

마지막에는 언젠가 주인과 같이 본 바닷속 야경을 찍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오기도 하죠.


출처 - 카페알파 2권. 이 그림의 저작권은 원작자, 출판사, 국내 정발 출판사에게 있습니다.


그날 찍은 것은 아침에 스쿠터를 담은 한 장 뿐이었어요.

이날의 출사는 지금 봐도 공감이 가더군요.

짐순이도 어릴 적부터 필카로 시작했지만 뭘 찍을까에 대해 고민만 하다

정작 찍고 싶은 것을 못찍은 적이 많았지요.

원체 순발력이 빠르지도 않고요

어어~하는 사이에 많은 것을 놓쳤습니다.

, 필카니까 필름값이며 현상료도 만만치 않았거든요.

그나마 멈춰있는 유적이나 찍는 게 고작이고요.

그저 부린다는 만용은 탑 하나에 36방짜리 필름 한 통을 쓰는 거.

뭐 어릴 적부터 화력/물량 덕후 기질은... 24방짜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죠.

(크고 많은 것은 아름답다!!)


나중에 똑딱이를 쓰면서도 그게 고쳐지진 않더군요.

맨 처음 쓰던 디카는 망가질 때까지 500에서 1천장을 겨우 넘겼을 겁니다.

그 다음 디카 때는 좀 나아져서 수천장,(아마 5천은 안 넘겼을 겁니다)

지금 연사기능이 있는 9만원짜리 디카를 

작년부터 쓰면서 이제 1천장은 넘겠지 싶어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사라져 짐순이의 사진만 남는다면,

아니 어떤 장소에 대한 사진이 오로지 짐순이의 것이 남는다면

탑이나 건물지 연구자는 좀 좋아하겠지만

(누군가는 일반적인 사진 같지 않다고 에둘러 이야기하더군요..)

다른 걸 연구하는 사람들은 미워할 것 같아요.

시야도 일상적인 것보다는 너무 큰 것에만 매달려 있다보니

만약 짐순이의 글만 남는다면

사람들은 문화사 연구는 전혀 못할 겁니다.

아마 정치 제도사나 전쟁사나 하겠지..

가끔 삼국사기에 불교관련 기록이 적다고 하시던 분의 글이 생각납니다.

김부식의 본질은 어디까지 정치적 사건을 중시하던 정치가지

인류학자나 문화사 연구자는 아니었죠

그리고 그는 우직하다 싶을 정도의 고문古文을 쓰는 사람이었어요.

그의 삼국사기에 정치적 기사 위주로 실려있기에

우리가 그것만을 공부해야 한다면 다른 기록들이 남지 않았음을 아쉬워 해야죠.

그가 쓰지 않았다고 욕하는 것은 온당치 않아요.

(뭐, 누군가는 김부식이 사료를 말살했다는 죄목을 씌우기도 합니다..)

뭐든 다 할 수는 없어요.

적어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는 겁니다.

하네카와 성녀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아는 것만 안다고요.

짐순이도 모든 것을 담지는 못할 겁니다.

다만 담을 수 있을 때까지는 담을 겁니다.

그건 짐순이뿐만 아니라 뭐든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 모두가 가진 마음이겠죠.


카페 알파의 마지막은 거의 사라져가는 세상에 남은 

알파씨가 그래도 살아간다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끝무렵에, 하루 한장도 찍지 못하던 그녀는 하늘을 향해 카메라를 던져

모든 것을 담아보기도 합니다.

이 카메라를 보내준 주인에 대한 답장을 마음 속으로 보내면서요.


출처 - 카페알파 14권, 저작권 얘긴 3판이라 패스! 앞과 동일해요.


그녀처럼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담을 수 있을까요?

문득 생각나 다시 통독하며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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