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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몽촌토성 풍경..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몽촌토성 풍경..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0. 11. 18. 23:58
지난 일요일에는 몽촌토성에 다녀 왔습니다.
원래는 풍납토성자리도 같이 보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어찌어찌하여 풍납토성은 포기하고 몽촌만 돌았습니다.
몸상태가 그닥이어서 자세히 돌지는 않았으나
성이 가지는 본연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으로 한정한 나들이였어요.

올림픽기념관에 전시된 올림픽공원과 몽촌토성의 축소모형입니다.


몽촌토성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올 겨울 특집으로 해도 모자랄 겁니다.
그런 매우 귀찮고도 어지러운 작업은 제껴두고
그냥 성을 찍은 사진만 나열합니다.

몽촌토성이 과연 왕성이냐 도성이냐
아니면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어느 것이 백제의 왕성, 도성이냐를 두고
십여년 가까이 논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아무렴 어때..에 가깝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왕성이 항상 고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조선시대를 예로 들어보면 조선의 정궁은 경복궁이었습니다.
임란직후부터 대원군 집정기까지 불에 탄 기간을 빼더라도
왕이 항상 경복궁에서 생활한 것은 아닙니다.
창덕궁이나 여타 궁에서 자주 머물렀지요.

백제의 한성시대 기록에도 한성, 한산 등의 변천양상에 기록에 잡힙니다.
정치적 상황에서부터 왕의 개인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어느 왕은 풍납토성을 썼겠고, 어느 왕은 몽촌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반드시 어느 한쪽만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건 합당치 않다고 봅니다.
(왕궁에 한정하지 않고 도성이란 개념으로 본다면 풍납이 더 어울린다고는 봅니다만
어느 한쪽만을 주장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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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지인과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오늘은 그저 성을 돌아본다는 느낌으로 보았습니다.


올림픽 공원쪽으로 들어가다보면 처음에는 어디사 성인지 감이 잘 안옵니다.
저 높이 솟은 것이 어디가 성이고 어디가 언덕인지..
그러나 좀 다가가면 나오지요.


좀 걷다보면 '너는 이미 성에 올라왔다'는 대사를 듣게 되지요(어디서!!)
이렇게만 보면 성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이 정도면 너무 낮은 거 아닌가란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뭐, 올 여름에 서안을 갔을 때 명대 성벽에 올라갔는데 꽤나 높더군요.
그런 성벽을 보다 보면 대체 이게 뭐 쓸모있냐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이 성벽이 아주 쓸모 없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이 성벽은 최소 1500년은 된 것입니다.
좀 낮아진 것도 완만한 언덕처럼 보이는 건 당시의 모습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머무를 때 교토의 신약사사를 복원하는 다큐에서 판축방식을 재연하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꽤나 높고 완만하지 않게 쌓을 수 있겠더군요.
1500년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높이는 낮아지고
또 깍이는 흙이 자연스레 옆으로 모인 경우지요.
돌이나 벽돌로 쌓는 것처럼 급하진 않겠지만 현존하는 판축성을 보면 우뚝 선 형태입니다.

설령 좀 낮더라도 문제가 아닌 것이
성에서의 싸움은 수비측에 유리한 것입니다.
(화약이 아닌이상) 똑같은 운동에너지의 물체를 발사해도 위에서 발사하는 것이 유리하고요.
또 공성군은 높은 성벽을 무기와 방호구를 착용하고 달려야 해요.
져지를 입고 가볍게 달리는 수준이 아니라는 거죠.

전에 히타이트에 대한 책에서 저자가 왕도 하투샤 왕궁 뒤에 있는 성을 언급하며
왕궁에서 성에 이르는 길의 경사가 '고작' 30도에 지나지 않으므로
성인 남성이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수준이라
실제 방어용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 것을 봤는데
적어도 대한민국의 예비역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아마 저자가 한 대 맞을 듯)
적어도 탄막을 뚫고 달려가는 것 자체가 애인만나러 가는 길은 아닌거죠.


처음에 몽촌토성을 봤을 때만해도 저렇게 엉성하진 않은 것 같았는데
세월이 저 목책을 쓰러뜨리는 것일까요?

행주대첩의 예를 보면 저런 목책이 굉장한 도움이 되었음은 분명해보입니다.
성으로 육박하는 적의 발을 일시적으로나마 묶을 수 있고
또 저 목책을 넘는 과정에서 화력의 밀집지역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라! 저 色姬들이 목책 넘고 있네. 야, 저기 갈겨버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일부분만 복원되어 실감은 안나지만 저런 시설이 성을 둘러싸고,
경우에 따라 두세겹으로 설치되었다면 꽤나 든든한 시설이 되었을 겁니다.

성을 돌다보니 북쪽의 성벽이 역시 높습니다.
멀리는 북한산, 가깝게는 남산과 아차산이 보이는 위치에서 서보았는데
서울을 가득 메운 고층빌딩이 없었다면 멀리까지 보였겠지요.

아파트 너머 보이는 게 아차산이죠. 개인적으로 온조가 올랐다는 부아악은 여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파트 너머 희미하게 뵈는 북한산

정말 희미하게 보이지만 사진 정중앙에 남산이 있습니다.


한 때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을 전공할 뻔한 아찔한 기억이 있지만
역시 현장을 돌아보니 좋더군요.
조만간에 풍납토성도 한 바퀴 돌아야 겠습니다.

※ 결국 화요일에 병원에 입원, 중환자실도 갔다가 이제 겨우 퇴원을 준비중입니다.
    일본 여행기의 다음은 집에 가서야 시작할 수 있을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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