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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소수림왕 5년 - 최초의 사원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소수림왕 5년 - 최초의 사원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12. 23. 20:01

원문
五年 春二月 始創肖門寺 以置順道 又創伊弗蘭寺 以置阿道 此海東佛法之始

 

해석
5년(375) 봄 2월에 처음으로 초문사를 세워 순도를 머물게 하였다. 또 이불란사를 지어 아도를 머물게 하였다. 이것이 해동 불법의 시초이다.

 

작은 모자이크도 아름답다..

한국고대사에서 불교의 위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태학설립과 율령의 반포/관제정비와 동급의, 어쩌면 그 이상가는 무게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이전의 일반적인 사상적 흐름은 그야말로 범신론이었죠.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 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전부 신비로운 존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었습니다. 산에는 산신이 있고, 강에는 강의 신, 동물과 초목, 바위, 당시로서는 규명되지 않은 모든 자연현상이 다 초월적인 존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도 모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었지요. 인간세상은 다 분업화를 고등으로 쳐주는데 이 종교의 영역에서만은 분업화는 원시적인 것으로 이해된다는 것은 사유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종의 역설입니다.

 

그러한 종교적 환경은 사회적, 정치적 관계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기존의 분업화된 종교의 영역은 아직 합쳐지지 않고 독자성을 유지하는 개개의 정치체들에게도 숨을 쉴 공간을 제공합니다. 이를테면 삼국사기에 따르면 사로 6촌의 수장들은 박혁거세가 등장하자 역사의 표면에서 가라앉지요. 그러나 각각 그들도 나름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를 표방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에서는 순간에 불과하지만 각각의 독자성을 가진 그 세력들이 박혁거세나, 석탈해, 그리고 김알지의 신화에 무릎을 꿇게 되는 건 수백년 걸린 일입니다. 설령 무릎 꿇었다 하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실의 우위가 규정된 것이지 모든 신앙체제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마을, 소정치집단의 신으로 작아졌을 따름입니다. 고구려의 계루부 왕실이 굳어진 이후에도 일부 정치집단은 자신들만의 제사체제를 유지하였습니다. 백제나 신라도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불교는 왕실의 신앙체계보다 더 큰 것이라 이것을 들여오며 주도권을 잡으면 사상적 통일도 가능해집니다. 너만 신의 후손이냐, 나도 신의 자식이다라는 소정치체의 독자의식을 희미하게 만들 수도 있고, 원시 불교의 유산인 왕권강화와 정복전쟁 합리화를 이용해 더 강력한 국가체제를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또 교단조직이 생겨나면 그것을 미약한 통치기구의 보조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신라에서는 초기에 불교교단을 지방통치의 한 수단으로 활용했지요. 그래서 삼국의 왕실은 불교 유입에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신도들이 이끈 작은 터전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지어진 사원이 불교의 시초로 기록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석가모니가 불교를 창시하던 시절에

왕들이 앞다투어 정사精舍를 짓던 것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이었을지도 모르죠.

 

다음 글은 잠시 앞으로 거슬러가 불교의 도입 순간에 대해 다루어 보기로 하지요.

과연 불교는 어떤 과정을 통해 도입되었으며

또 그 사건은 후대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은하의 역사가 또 한 페이지 넘어갑니다.

 

말꼬리 -----------------------------------------

1.

보통 寺를 사라고 발음합니다. 그러나 관공서를 말할 때는 시라고 읽습니다.

이는 아마 관공서를 비워 절을 짓던 중국 초기 불교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고

또, 처음부터 왕권, 국가권력과 손을 잡았던 불교의 속성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2.

어떤 글/책에서는 초문사를 성문사省門寺라고 쓰기도 합니다.

이는 해동고승전의 기록에 따른 것인데,

일단 삼국사기의 기록을 존중함을 밝힙니다. 

3.

이 두 사원의 위치를 고증하는 논문도 있는데 아직 소화를 못시켰습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4.

이 달에 처음 쓰는 삼국사기 글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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