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짐순이가 주로 보는 삼국사기 원문과 번역본 판본 2 본문
과거완료에 가까운 책이긴 합니다.
그러나 사용 회수만 놓고 본다면 압도적이었던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제는 말해봐야지, 해봐야지 해도 선듯 말하기 어려운 이름
두계 이병도..
이 시대에 그의 저작물을 읽는 이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물론 서점에서 구하기도 어렵고, 또 너무 지난 학술논문이라...
연구사, 학설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말 고문일 정도)
툭 던지듯 말하기는 쉽지만
중심잡고 이야기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식민사학 프레임만으로 보면 참 쉽죠. 하지만 여기가 그런뎁니까..)
그런데 개인적으로 짐순이가 꼽는 최고의 업적은 삼국사기입니다.
해방전후부터 시작된 원문 교감과 번역, 주석작업이
한 사람에 의해 수십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점도 대단하지만
(사실 짐순이가 가장 욕심내는 부분입니다..)
실제 한국고대사 연구의 기반을 닦는데 가장 기여한 책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이 1977년이고
짐순이가 가지고 있는 이 책은 거의 최종본에 가까운 1994년 본입니다.
(죽은 건 1989년이지만 책은 96년도 근처까지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1977년에 나왔지만 쇄를 거듭할 때마다 눈에 띄지 않게 개정되어 왔습니다.
그의 연구여정을 지켜본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항상 머리맡에 이 책을 두고 끊임없이 교정을 봤다고 합니다.
물론 많이 팔려야 가능한 이야기기도 하지만
죽을 때까지 이미 나온 책을 수정하고 수정한다.. 이거 쉽지 않거든요.
책은 원문교감(그러니까.. 원문의 오탈자를 교정하고 복원하는 작업)과
역주라는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지금처럼 전자화일로 넣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면
한국ㄱ고대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교통환경도 좋지 않던 시절에 다른 책과 함께 이걸 들고 다녔겠지요.
아직 한국의 양장본 제작 수준이 어느 정도 발전하기 전 제책이라
조심조심 보지 않으면 곤란해보이는 책입니다.
실제로 짐순이가 보던 책은 2중으로 표지를 싸고
안에도 보수를 거듭한 흔적이 많죠.
(그러니까 사진의 모델은 보관본이란 말씀)
둘을 펴놓으면 이렇습니다.
눼, 둘 다 세로줄입니다.
달리 1970년대 책이겠습니까?
가로읽기에 익숙한 짐순이로서는 읽다가 순간순간
나는 누구고 여긴 또 어딘가..를 반복해야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좋은 거 하나는 세로줄 책을 읽다보니
또 세로줄 책에 익숙해지더라는 것,
아니 적어도 다른 세로줄 책을 봐도 멀미를 덜하더라 정도?
그리고 1990년대 중반까지 나온 책들은 활자 크기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같은 판형에도 글자 수가 확 차이납니다.
요즘처럼 큼직큼직하고 줄간격도 꽤나 넓은 책을 보던 이에겐
세로줄이 아니래도 숨이 콱막힐 지경일 겁니다.
요건 원문 교감본을 찍은 겁니다.
옛날 책을 많이 보던 분들은 글자 자체나
뒷면의 인쇄상태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 책은 활판인쇄물입니다.
70년대 나온 책을 90년대 이후 다시 찍어낼 때
보통 영인이라고 해서 일종의 복사하듯 찍어내는데
이건 마지막까지 활판인쇄 그대로 찍어냈습니다.
현대의 컴퓨터 조판이야 화일만 보존되면 계속 똑같이 찍어낼 수 있지만
활판인쇄는 그때그때 식자작업을 해야하기에
다시 찍는 것도 다난한 일이거든요.
그것도 90년대 후반까지 이렇게 나왔다니..
정작 그의 제자로 양대 학파의 뿌리가 된
이기백 선생과 김철준 선생의 책은
상대적으로 조악한 영인된 상태로 나오는 거 보면 재미있습니다.
위의 여백에 작은 글씨로 무슨 글자가 써있는데
70년다까지 나온 학술서의 경우 저기에 소단원 표시가 있었지요.
이를테면 ')'과 '( )' 정도?
그런데 이 책에선 글자를 교정한 내용이 저기 실려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원문의 오탈자를 바로잡은 것에 대한 각주인 셈이지요.
양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후일의 원문 연구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사학사적 의의를 가진 겁니다.
짐순이의 감상용 원문편은 형광펜과 색깔테이프로 도배가 되었지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오겠지만
정문연본으로 한참 하던 작업들도 실은 이 책으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 책 덕분에 삼국사기 주자본에 적응이 빨라졌달까.
아마 어르신들의 경우 이 책을 보다가
중종 임신본(이른바 정덕본이라 부르는 목판본)으로 넘어가는데
이걸 보다가 주자본으로 가는 애는 아마 짐순이 뿐이었을 겁니다.
지금보면 많은 이들이 구토, 설사를 할만큼 한자가 많지요.
하지만 좀 더 앞시대 책으로 가면 저기 보이는 한글도 죄다 한자어.
당시로는 꽤나 풀어쓴다고 한 게 이겁니다.(이른바 동급생2 한글화 97%)
최초의 국한문혼용체라는 유질준의 서유견문 이래로
한자와 한글은 동거를 시작했는데
(한글소설은 저기 한자가 그냥 한글표기.. 오히려 이게 더 어려움)
어찌보면 우리 블로그에 오시는
많은 노땅 언니옵하들은 이런 책을 읽으시며 공부를 한 거군요!
왼쪽, 그러니까 책의 진행방향으로
끝에 있는 작은 글씨는 여기에 대한 주석을 달았습니다.
각주가 빽빽한 책,
정문연본 삼국사기로 처음 본 이들은 이게 뭐야 하겠지만
당시 한국사학계 수준에서 이런 주석을 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모험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뒤에 언급될 다른 책들이 한자 자구에 대한 각주를 달았다면
약소하긴 해도 이건 역사연구에 의한 주석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사학사적 위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문문장의 수려함이야 1970년대 초반에 나온 이재호 선생본이 있고
또 1977년에는 신석호 선생의 번역본도 나왔습니다.
그외에도 몇몇 분들이 삼국사기 번역본을 내었죠.
두계 이병도가 어찌되었거나 한국고대사연구를 일으켜 세운 거인이라 해도
또 평생에 걸쳐 손을 보고 또 보고
(누군가는 책이 빨간 글자로 덮였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틀린 것이 있습니다.
짐순이도 한 군데는 알고 있지요.
그러나 이 책이 여타 번역본과 다른 위치에 서야 한다면
최초의 본격적인 원문교감,
그리고 역사연구에 의한 주석작업이라는데 있을 것입니다.
1977년의 한국고대사학계가 보여줄 수 있었던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죠.
수치상으로라면 요즘 나오는 역주본(정문연본)이 더 좋기는 합니다.
짐순이도 아예 그쪽으로 갈아탔다고 보는 게 맞고요.
그러나 야구에도 현재와 과거의 투수들을 비교하기 위해
일종의 상대평가를 적용한 조정방어율을 쓰듯
출판 시점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
얼마만큼 당시 연구성과를 집약했는가를 살펴본다면
이 책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는 책은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말꼬리 --------------------
1
찾아보니 이 교감역주 작업은 1940년에 신라본기의 앞부분,
해방후 신라본기 후반부+고구려본기의 일부가 간행되었다고 합니다.
2
베이브 루스는 아니지만 예고 한 번 더 하죠.
내일은 그렇다면 정덕본은 뭔데.. 이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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