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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경주 1일째 120219 두번째 이야기..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경주 1일째 120219 두번째 이야기..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2. 20. 15:22

세계최초! 개기일식, 월식도 아닌 '탑식' 사진 촬영에 성공. 한국의 블로거 RGM-79의 쾌거. -_-;;;



경주를 그렇게 좋아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은 고구려 후기 수도였던 평양성이었고
그게 불가능해서 대신 부여에 애정을 쏟았고
반면에 경주는 그냥 가는 곳.. 이런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서안을 가게 되고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서
경주에도 관심이 생겼달까요.
(요즘, 선배는 통일신라로 전향해 광명찾으라고 하고, 후배는 전공바꾸셨어요라고 묻습니다)
작년에 총알부족도 있어서 나라에서 열리는 정창원전을 가지 못한 아쉬움과
개인적인 일이 겹쳐 경주를 찾게 되었습니다.

마치 떠나는 날의 감상같은 서문은 집어치우고
다시 포석정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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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은 그저 경애왕이 나라의 위기에도 정줄놓고 술쳐먹으러 가서 놀다가
나라를 말아먹고 자신도 죽은 역사의 무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그게 아니라는 반론이 서서히 힘을 얻고 있는데
RGM-79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쪽입니다.

물론 적이 쳐들어올 때까지 헤롱거리다
성까지 밀려오니 총애하던 후궁들 데리고 우물 속에 숨으려한
남조 진陳의 후주같은 임금도 있었습니다만
과연 경애왕이 궁궐도 아니고 그 곳까지 행차하여 술을 먹고 휘청거릴 이유는 없지요.

물론 삼국사기 경애왕 말년의 기록을 보면
포석정에서 흥청망청 놀다가 견훤이 닥쳤다고 합니다.
이렇게만 본다면 포석정이 놀이터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물이 흘러가는 특이한 구조물과 함께 술잔을 띄워 마시는 풍습이야
위진남북조 때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한 것이긴 한데
하필 시조 탄생을 기리는 제의지, 일성이사금, 지마이사금 등의 왕릉,(모두 박씨 왕입니다)
이런 것들이 있는 곳 옆에서 박씨라고 주장하는 왕이 논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고
또 원래 술잔을 띄워 마시는 건 계곡과 가깝거나
자연적인 물 흐름을 이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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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포석정은 그렇게 큰 규모도 아니고 물도 인위적으로 흘려야 합니다.
또, 그 당시의 연회는 단순한 유흥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면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경애왕이 산천 혹은 조상에게 국가의 안녕을 비는 제의를 수행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신라는 국가전체를 포함하는 매우 질서 정연한 제의체계를 갖춘 나라였고
어느정도 국가의 지배력이 붕괴되는 와중에도 왕이 주관하는 제의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문은 쉬이 해결이 될 문제는 아니라지요.

포석정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간 다음 감포로 행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보문관광단지에서 덕동호, 토함산 뒤편으로 도는 산길인데
이 길은 초기 신라 경주의 주요 교통로기도 하고
건국 초반에 여러차례 충돌한 왜군의 진격로이기도 합니다.
석탈해가 토함산의 산신이 된 것과 석굴암이 세워진 이유,
그리고 감은사지와 문무왕이 동해의 용왕이 되리라는 이야기는
이 길에서 하나가 됩니다.
신라 초기에는 감포에서 토합산에 이르는 길목을 막는 것이 중요 안보상황이었고
7세기란 동아시아 대격변기에 혹시 있을지 모를 일본의 침입을 막는 것이
신라의 위정자들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기에
시대가 다른 이 일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입니다.

버스를 탈 때쯤엔 좀 기진맥진한 상태라 언제 뻗어도 이상치 않았는데
역시나 깜빡 졸다 일어나니 지난 줄 알고 가슴을 졸이기도 했는데
내리고 나니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찬바람만 불었습니다.

솔로몬, 아니 감은사여, 내가 돌아왔다!!!



예전이라면 미친듯이 사진을 찍어댈텐데
그렇게 열광하던 탑에 대한 열정도 차츰 식어가고
또 귀찮음에 주저하다
겨우 맘다잡고 사진을 찍어대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어 찍기가 어려워졌습니다.
(RGM-79는 사람사진을 거의 안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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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떠나나 싶으면 다른 팀이 밀려오고 
또 기다리자니 해는 저물고
결국에는 몇 컷은 포기했는데 겨우 찍은 게 이정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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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문 감은사탑에서 볼 일을 마치고
감포로 갈까 경주로 돌아갈까를 고민하는데
먼저온 차를 타기로 해서 내심 경주행이 오기를 고대했는데
감포행이 먼저 왔습니다.
1시간에 한 대 오는 차라 뭐라도 타야하는 상황
그래서 감포에 갔습니다.

여기는 매년 여름만 되면 서로 빠뜨릴려는 연례행사가 열리곤 하는데
어릴 때는 찍사라고, 좀 지나서는 짬으로 버틴 기억밖에 없습니다.
첫 찍사로서의 일이 매우 흔들리는 전쟁다큐를 담는 일이었는데
그 때 그 사진은 어디갔는지 순간 궁금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문무왕의 진짜 무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 그러나 그것을 믿는 과정도 역사가에게는 중요한 사료가 됩니다.


하여튼 해저문 바닷가에 다다르니
난데 없는 꽹가리소리가 울리길래 뭔가하고 보니
굿을 하고 치성을 드리고 있습니다.
경험상 그쪽으로 카메라를 돌리면 안되는지라
그냥 바다만 찍고 왔습니다.
문무대왕릉이라고 불리는 대왕암 몇 컷 찍고
마지막으로 그 분들이 치성올리던 자리의 흔적만 담았죠.

이거슨 촛불시위가 아니라능. 그저 향을 피우며 옆에 켜놓은 거라능


이렇게 첫째날의 일정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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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를 도는데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이 왔는데
아이들은 왜 이 절이 소실되었는지를 묻습니다.
해답은 무엇이었을까요?

가) 스즈미야 하루히가 消失될 적에 같이 사라졌다
나) 지온군이 스페이스 콜로니를 떨어뜨릴 때 燒失되었다
다) 임금님들이 자꾸 小室을 두니 부처님도 돌아앉고, 왕비님이 신나를 뿌리며 화형식을 개최하다..

정답은 무지 추워서 경주의 산천초목이 벌벌 떨었다 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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