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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약간 사료가 될 사진들5. 삭주농민회의 사무실건물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약간 사료가 될 사진들5. 삭주농민회의 사무실건물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25. 11. 21. 12:40

삭주와 명주의 독립운동 중 사회분야의 지역별 특색은 참으로 이채롭다.

삭주명주도의 치소가 있던 삭주읍에서는 신간회나 여성단체(이름이 갑자기 생각 안남)의 주지부가 세워졌다. 아무래도 주의 중심이다보니 이런 전국단체의 지부가 많다. 그외에도 교육의 중심지다보니 왜정시대의 학생들이 집단 휴교라던가 하는 투쟁은 삭주의 제일고보(현재 삭주고), 농고(생명과학고)에서 일어난다.

반면 영서 삭주의 또 다른 중심지 북원경에서는 지역밀착형 사회단체가 번성한다. 다른 군현의 청년회가 유명무실한 반면 이 지역의 청년회는 매우 왕성한 활동을 한다. 홍수라던가 하는 비상시기에 복구활동에 활발하게 앞장서고, 각종 계몽운동에 나선다. 또 삭주명주도 유일의 형평사운동도 북원경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현대에도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성지가 북원경인데(이게 지학순 주교와 북원경인 장일순의 합작이다만) 개인적으로 북원경에서 협동조합운동이 크게 번성한 건 당연하다고 본다. 다만 현지인들이나 삭주명주도의 사회적 경제 인사들은 두 사람을 기원으로 믿는다만, 그들이 그리 부러워하는 요로빠에서 협동조합이 번영한 곳 중 이기리스 말고 이딸리아와 에스빠냐의 조합운동의 기반이 어케 조성되었나를 제/대/로 알면 좀 이해를 할라나. 여전히 막연한 동경만 하는 분위기다.

또 재미있는 건 명주다. 이곳은 왕경/케이죠보다 원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물론 영서 삭주읍도 철원까지 나아가 추가령구조곡을 타면 원산과 매우 아깝게 움직인다. 애초 매금국의 삭주도 삭주읍과 원산이 한 관내다. 여튼 원산을 거쳐 로씨야에서 내려온 빨간물이 쭉쭉 들었다. 특히 지금의 동해읍의 일부인 옛 삼척 북평의 심모씨를 중심으로 한 적색단체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단, 그 심씨가 40년대에 들어선 잠잠한데 왜정기에 죽은 건지, 해방공간과 분단기에 휩쓸려 사라진 건지 개인적으론 알지 못한다. 삭주읍의 시각장애인 학교인 명진학교도 창립자(현재는 약간 잊혀졌다만) 역시 왜정시기에 원산에서 침술을 배워 해방 후 맹인 고아를 모아 만든 게, 그 역사의 시작이다.


삭주의 사회운동이 약간 중앙집권적 구조에 처해있었다면(학생들의 동맹휴학도 이런 기반이다. 애초의 도내 최고 학교가 삭주읍에 있었으니) 좀 이색적인 것이 신동면의 금병의숙(김유정이 1여년간 유지한 야학)과 신북읍의 삭주농민회다.

아직 삭주농민회의 건물이 남아있다. 원래는 뼁끼질한 반질반질한 공구리 건물인데, 아주 간만에 다시 가보니 장식이 더해졌다. 처음에는 다른 건물이 지어졌나 싶었다. 아니면 여기가 아닌게벼??? 그러나 정미소가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여기임을 확인.

그런데 여전히 이걸 알리는 표지판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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