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발해의 멸망은 백두산 탓이다??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사건과 진실

발해의 멸망은 백두산 탓이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5. 30. 18:30

저 아래 보이는 게 백두산의 '몸통'입니다.


1980년대였나 일본의 학자들이 백두산의 분화가 발해멸망의 배경이라는 설을 발표했습니다.

그에 대해 우리 학계에서는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의 과학상식으로야 황당무개한 이야기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발해의 멸망원인으로 거란의 대두와 위협,

그리고 발해 내부의 정치적 내분을 드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국가 멸망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내부 분열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실제로도 내부가 안정적인데 순수한 외부 충격으로 쇠망하는 국가의 예는 없습니다.

압도적인 서양 무기에 굴복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정치체로 반론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잡한 내정 문제가 얽혀있습니다.

하다못해 피사로의 2백명에게 8만 석기시대 병사가 패한 잉카제국도

내분상태에 처해있었고, 많은 이들이 피사로를 지원하고 있었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발해멸망을 정치적으로만 단순하게 보았다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지구나 우주에 대해 지식은 근 10년 간 폭발적으로 쌓였지요.

그리고 역사와 과학의 접근도 그리 오래된 것만은 아닙니다.

화산에 대한 이해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더 쉽게 말해 화산을 겪지 않은 우리 입장에서는 귀에 안들어올 이야기였지요.

오히려 귀를 귀울이는 것이 이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80년대라면 발해사연구자는 극히 소수였고

기본적인 구조를 해석하는 단계였으니까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갓난아이에게 미적분 책을 보여주곤 이걸 이해 못한다고

혼내지는 않으시겠죠?


개략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백두산의 화산 분화가 일으킨 기상이변과 여러 후유증이

발해의 생산력 근간을 흔들고 국가 시스템에 큰 동요를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산에 대해서라면 지긋지긋하게 겪고 있는 경험치와

그 시절에도 고기후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된 일본에서는 나올만한 이야깁니다.


먼저 이 설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화산은 단순히 불뿜고 약간의 연기와 잿더미를 날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전 지구 상에 7개 정도의 수퍼 볼케이노라는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만 터져도 전지구적 재난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중 최고라는 미국의 옐로스톤에서 초거대 화산의 흔적을 찾다보니

옐로스톤 공원 자체가 화산 분화구 크기라더군요.

이 옐로스톤의 화산은 매우 심각한 재난요소라고 합니다.

백두산은 그만큼은 아니지만 화력에 있어서 그 아랫급에 위치하는 화산입니다.

이 화산의 분화로도 지구 전체의 평균온도가 2~3도 정도는 낮아진다고 하더군요.

발해가 존재했을 당시에는 5천미터에 가깝던 화산이

현재는 2750미터로 낮아졌습니다.

몇년 전 아이슬란드의 화산 하나가 분화하니 유럽의 모든 항공기 운행이 중단된 것이나

백두산보다 덜했다는 1800년 초반 인도네시아의 화산 분화 때도

전지구적인 기온하강을 겪을 것을 생각하면 그 분화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다만 인구밀집지역과 너무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고

발해가 기록을 남겨놓지 못한 상태라 다만 짐작만 할 뿐입니다.

인근의 생태경제를 전면적으로 붕괴시켰을 것이고

또 그 충격이 국가 전반에 퍼졌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라는데 풍화보다는 지질활동이 갑입니다.


그러나 이 설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백두산이 언제 분화했느냐는 것입니다.

발해는 인구밀도가 희박한 국가였고

(가끔 고구려 인구가 천만이라는 둥 과거의 인구를 과다하게 잡는 분들이 계신데

그게 얼마나 플라나리아랑 1촌관계 맺는 짓인지는 다음에 써보죠)

후계 국가를 만들지 못했기에 기록에 남은 게 없습니다.

과거의 국가들이 친절하게 이웃나라 환경재난을 기록하지도 않고요.

그렇다고 백두산이 스스로 모년 모월 모일 화끈하게 터트렸다고 일기를 쓴 것도 아니죠.

현재의 기술로는 언제쯤 분출했다는 것은 알아도 정확한 날자를 특정하진 못합니다.

그래서 일부에선 발해 멸망 이후 분화설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9~10세기에 걸쳐 2차례 분화설이 나와 앞선 분화가 발해멸망과 관련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선 분화가 언제냐도 여전히 문제입니다.

그것이 이른 시기의 사건이라면 영향을 주었다고는 할 수 있어도

멸망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조직화가 된 사회라면 초보적으로라도 데미지 컨트롤은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 영향을 아주 없애진 못해도 서서히 중화시킬 정도는 됩니다.

그걸 잘하지 못하면 차라리 민란으로 무너질 확률이 높죠.


북방에서 일어난 국가 중 유일하게 남진하지 않고

만주에서 벼농사를 지었다는 나라가 발해인 것을 생각하면

화산 분화같은 사건이 큰 영향을 주긴 했을 겁니다.

(5,6공때 삼강평원이라고 발해인의 농토라고 개발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지요.

천년전엔 벼농사 가능지역이 얼어붙어 있었으니까요)

또 아무리 내분이 있었다해도 멸망 후 200년 동안 독립운동을 한 나라가

한달만에 전격적으로 무너진 것을 생각하면 화산때문이라고 믿고 싶어집니다.

다들 발해가 신비 속의 나라라고 하는 것처럼요.



09년에 가서 찍었는데, 분화후엔 이것도 자랑이 되겠군요. 나, 가봐뜸!!!



물론 백두산이 한 요소가 되었을 것이란 가설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 대한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926년 직전에 대대적인 화산 폭발이 일어났고

그것이 북쪽에 위치한 발해의 주요 경제생산기지들을 괴멸상태로 몰아가고

국가가 급격히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들었던 요소들이 하나로 이어지느냐에 대해선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매우 흥미롭고 개인적으로 솔깃한 이야기지만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현재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연요소만 강조하면 인간의 역사는 의미를 잃습니다.

대체 우리랑 풀뜯는 초식동물과 뭐가 다른가요?


최근 백두산의 분화가 임박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새삼스럽게 발해멸망설이 나옵니다.

가설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조심스럽습니다.

만약 너무 신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그런 글이 있다면

잠시 머리를 식혀주시길 바랍니다.

이른바 연구자라는 종족의 특성상 자료가 없으면 한마디도 못합니다.


※ 말꼬리 : 

이 글을 쓰다가 백두산의 높이가 생각나지 않아 검색을 돌리다 보니

오늘 올라온 글이 있더군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5300951451&code=960201

제 글보다는 더 화끈하고 간단 명료합니다

다만, 조심스러워해야 할 부분도 많더군요.

그러나 판단은 읽는 분의 몫입니다.


해야할 말을 많이 놓친 것 같네요.

그래도 다시 쓰긴 귀찮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