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오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 학부 답사준비 세미나에 갔다 왔다. 답사자료집에 들어갈 내용을 미리 점검하는 자리인데 거기서 재미있는 발표가 두 건 있었다. 그중에서 불국사와 석굴사(석불암)에 대한 발표에서 의문점을 던졌는데 두 절이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 일개 귀족이 고작 부모를 위해 짓는 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신심이 강하다한들 불상이나 조성하는 정도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먼저 결론을 이야기하면 그 건 틀린 생각이다. 먼저 불국사와 석불사가 아무리 위대한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국가 차원에서 관리할만큼 중요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의 문장을 두 절의 가치가 없단 말로 오해 말기를 바란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절은 황룡사나 사천왕사, 흥륜사 등의 '성전'..
대개의 경우 딸이 아버지에게 대들어서 좋다고 하악하악할 부모는 화성인을 만나기보다 어렵습니다. 바로 평강왕도 그런 평범한 아버지입니다. 원문 王怒曰 “汝不從我敎 則固不得爲吾女也 安用同居 宜從汝所適矣” 於是 公主以寶釧數十枚繫肘後 出宮獨行 路遇一人 問溫達之家 乃行至其家 번역문 왕이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니 즉 나의 딸이라 할 수 없다. 어찌 같은 곳에 살 수 있겠느냐. 마땅히 네가 가고자 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 좋다"라고 하였다. 이에 공주는 보석 팔찌 수십매를 팔꿈치 뒤에 매고 홀로 궁궐을 나왔다.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묻고 바로 그 집에 이르렀다. 드디어 공주가 쫓겨납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아무리 뚜껑이 열린 상태라 ..
앞에서 온달을 소개했으니 이제는 여주인공인 공주를 소개할 차례입니다. 대개 평강공주라고 불리고 있으나 실제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평강공주라는 이름은 평강왕의 공주라는 뜻으로 불립니다. 자, 기록을 살펴보죠. - 원문 - 1. 平岡王少女兒好啼 2. 王戲曰 “汝常啼聒我耳 長必不得爲士大夫妻 當歸之愚溫達” 王每言之 3.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高氏 4. 公主對曰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故曰 ‘王者無戱言’ 今大王之命 謬矣 妾不敢祗承” - 번역문 - 1. 평강왕에게는 작은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울기를 잘하였다. 2. 왕이 놀리며 말하기를 "너는 항상 울어 내 귀를 아프게 하는구나. 장차 커서는 사대부의 아내는 될 수 없으니 마땅히 바보(같은) 온달에게 시집보낼 수 밖에 없구..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관련된 전설로 그가 삼국사기를 펴내면서 과거의 사료를 불태워 자신의 저작만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그랬던 것일까? 김부식보다 한참 뒤에 살았던 이규보의 글에서 한가지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동명왕(東明王)의 신통하고 이상한 일을 많이 말한다. 비록 어리석은 남녀들까지도 흔히 그 일을 말한다. 내가 일찍이 그 얘기를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선사(先師) 중니(仲尼)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지 않았다. 동명왕의 일은 실로 황당하고 기괴하여 우리들이 얘기할 것이 못된다.” 하였다. 뒤에 "위서(魏書)"와 "통전(通典)"을 읽어 보니 역시 그 일을 실었으나 간략하고 자세하지 못하였으니, 국내의 것은 자세히 하고 외국의 것은 소략히 하려는 뜻..
자, 시작해볼까요? 드디어 삼국사기 권45, 열전5 온달전의 첫머리, 온달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하는 대목입니다. 먼저 왼쪽의 문장을 보기 쉽게 옮겨봅니다. - 원문 溫達 高句麗平岡王時人也 容貌龍鐘可笑 中心則曉1)然 家甚貧 常乞食以養母 破衫弊履 往來於市井間 時人目之爲愚溫達 - 해석문 온달은 고구려의 평강왕 때의 사람이다. 용모는 파리하여2) 우스웠으나 마음만은 밝았다. 집이 매우 가난하니 항상 음식을 구걸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떨어진 옷과 헤어진 신으로 저자거리를 왕래하니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바보(같은) 온달이라 하였다. 주 : 1) 정문연 본에 따라 曉로 수정 2) 龍鐘 : 늙고 여위었다는 뜻이나 파리하다로 수정. 이기백, '온달전의 검토'("백산학보" 3, 1967 ; "한국고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