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할 이야기는 다 한 관계로 오늘은 사진 몇 장 올리고 몇몇 이야기나 하는 것으로 넘어갑니다. 주말엔 쉬고 싶습니다. (사실 못쉬었습니다. 일하느라) 환도성을 내려오는 길, 너무 아쉬운 게 많아선지 아님 환인호를 보고 마음의 긴장이 풀린 것인지 촛점이 잡히지 않네요. 너무너무 떨고 있었습니다. 뭐, 내려가는 길만 봐도 성곽고고학 전공을 선택하지 않은 자신이 사랑스러워졌습니다. (나르시즘? 아놔 -_-;;;) 어쩌다 마주친 그대..도 아니고 계속 만나는 주거지. 그래도 ㄱ자형이 잘 남아있어서 또 담아보았습니다. 원래 온달 전공이래서 온돌 사진에 광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 성을 내려가기 전에 만난 오녀산성의 동문, 성문이라 해서 숭례문이나 흥인문 같은 반짝반짝하는 성문만을 생각사시는 여러분께 락커 문군이 ..
RGM-79는 첫 날 화를 냈습니다. 대련에서 단둥으로 가는 길목에서 산이 별로 없고 지평선이 보이는 광경을 보며 외쳤지요. '어떻게 산이 병풍처럼 시야를 가로 막지도 않아. 이거 불법이얌!' 눼, RGM-79는 강원도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이틀 째부터 신이 났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고향산천 복사한 듯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 홍천군의 산길을 헤메고 왔기에 너무 익숙한 풍경은 맘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음식만, 그러니까 그 놈의 오향만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간체만 아니면 푹 삶은 듯 머물러도 향수병은 걸리지 않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다죠. 자꾸 고구려하면 드넓은 벌판에 말달리고 활쏘는 것부터 상상하시는데 실제로 고구려인들은 산에 사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사진을 찍는 감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긴 사진을 찍은지 5년 가까이 되다보니 머얼리 머얼리 안드로메다 관광여행이라도 떠났나봅니다. 말도 사맛디 아니한 듕궉에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갈 길은 먼데 해는 저무는 걸 바라보는 오자서의 심정으로 찍었습니다. 그러나 찍은 사진이 많은 이상 두 차례에 걸쳐서 나누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4일은 환인현의 오녀산성을 방문하였습니다. 비사성이야 오토바이로 올랐지만 오녀산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계령은 RGM-79에게 오지마라, 내려가라 하지만 이놈의 산은 거부하질 않는군요. 제발 출입거부 명령 좀 내려주시옵소서.. 일행들에게 산은 멀리서 보는 것이지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항변하였지만 결국 끌려끌려 올라갔습니다. 첫날 밤을 보낸 단둥시의 호텔 앞 ..
RGM-79는 지난 8월 23일부터 27일까지 4박 5일로 듕궉 동북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대련-단동-통화-집안-백두산-장춘을 거쳐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고구려 유적과 백두산을 돌아보았는데 역시나 RGM-79에게는 고구려 유적이 더 중요하였죠. 새 글 쓰기는 귀찮고, (눼, 귀차니스트 맞습니다) 사진 정리도 늦어졌고 이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건 역사상 유래 없는 초광속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직 책상 위에 6년 전 현상안한 필름통이 굴러다닙니다. -o-) 맨날 유물이나 유적사진만 찍는 통에 여행을 떠나 찍는 센스는 극악이지만 한 번 공개는 해볼까합니다. 오늘은 첫날 사진을 올립니다. 대련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던 대련시내의 한인 거리.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듕..
論曰 人君卽位 踰年稱元 其法詳於春秋 此先王不刊之典也 伊訓曰 成湯旣沒 太甲元年 正義曰 成湯旣沒 其歲卽 太甲元年 然孟子曰 湯崩 太丁未立 外丙二年 仲壬四年 則疑若尙書之脫簡 而正義之誤說也 或曰 古者 人君卽位 或踰月稱元年 或踰年而稱元年 踰月而稱元年者 成湯旣沒 太甲元年 是也 孟子云 太丁未立者 謂太丁未立而死也 外丙二年仲壬四年者 皆謂太丁之子太甲二兄 或生二年 或生四年而死 太甲所以得繼湯耳 史記便謂 此 仲壬 外丙爲二君 誤也 由前 則以先君終年 卽位稱元 非是 由後 則可謂得商人之禮者矣 사론(史論): 임금이 즉위하면 해를 넘겨 원년을 칭하는 것은 그 법이 춘추에 상세히 있으니, 이는 고칠 수 없는 선왕의 법이다. 이훈(伊訓)에 ‘성탕(成湯)이 이미 죽었으니 태갑(太甲) 원년이다.’하였고, 정의(正義)에는 '성탕이 이미 죽었으니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