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요 며칠 머리회전도 멎어버려 아무 일도 못했습니다. 여름이기도 하고요(여름은 쥐약입니다) 지쳐버린 탓이기도 했습니다. 공부도 공부고, 블로그 관련 세 집 살이를 하는데 전부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휴가도 없는 일상이 사람 기력빠지게 하나봅니다. 그러다 몇 년 전에 보고 분노했던 기사를 다시 읽어버렸습니다. 아니 웹 공간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죠. ‘치우천왕’과 “구역질나는 삼국사기”(한겨레 2005-10-04) 이 기사를 다시 읽으며 맥이 빠져버렸고, 의욕이란 게 다시 살아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삼국사기 블로그를 열었다고 해서 무조건 빠돌이 역할을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김부식이란 인간 자체도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삼국사기도 완벽한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땅의 사람들에게 구역질난다는 소리를 들을 정..
공주와 온달의 첫 만남은 아름답지도, 유쾌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자식들 앞에서 머리끄덩이를 잡혀도 할 말 없는 온달. 어찌보면 마누라 잘 만났다고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용케 결혼했구나 하는 심정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 원문 公主出行 至山下 見溫達負楡皮而來 公主與之言懷 溫達悖然曰 “此非幼女子所宜行 必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遂行不顧 - 번역문 공주는 (집에서) 나와 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공주가 그에게 품었던 속내를 말하니 온달이 발끈하여 "여기는 어린 여자가 마땅히 올 곳이 아닌데(나타나니), 필히 사람이 아니고 (사람을 후리는) 여우귀신이구나. (너는) 나를 괴롭히지 말라"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지난 글에서는 나무 껍질이라고 해석..
지난 글에서 끊어 읽기를 잘 못한 것 같습니다. 乃行至其家를 문장이 끝나는 것으로 했는데 다시 읽어보면 이 문장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뒤에 오는 내용이 매끄럽게 연결되지요. - 원문 1. 乃行至其家 見盲老母 近前拜 問其子所在 2. 老母對曰 “吾子貧且陋 非貴人之所可近 今聞子之臭 芬馥異常 接子之手 柔滑如綿 必天下之貴人也 因誰之侜 以至於此乎 惟我息 不忍饑 取楡皮於山林 久而未還” - 번역문 1. (공주가) 그 집에 이르러 보니 눈이 먼 노모가 있음을 보고 앞에 나아가 절하며 그 아들의 간 곳을 물었다. 2. 노모가 대답하기를 "우리 자식은 가난한데다 미천하니 귀인이 가히 가까이할 바가 못됩니다.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내가 특이하오. 그대의 손은 부드럽기가 면과 같으니 반드시 천하의 귀인일..
펄펄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워라 이내몸은 뉘와 함께 돌아가리 - "삼국사기"13, 고구려본기 1, 유리왕 3년조 고구려 초기사는 백제나 신라와는 어딘지 다른 색채를 보여준다. 우선 백제나 신라가 소국단계에 머물며 각기 마한과 진한지역의 패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발버둥칠 때, 이미 중국에까지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백제나 신라의 기록들이 이때도 대단했다고 말하듯 왕-귀족(신하)-백성의 '세 위계'가 체계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면, 고구려의 그것은 좀 다르다. 왕뿐만 아니라 왕자나 귀족들의 행위가 다양하게 그려진다. 왕자는 가만히 왕실의 수나 채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간다. 때론 차대왕 신성처럼 뭔가 성공하기도 하지만, 대개 그러한 행동이 돌출행위가 되어 탄압을..
오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 학부 답사준비 세미나에 갔다 왔다. 답사자료집에 들어갈 내용을 미리 점검하는 자리인데 거기서 재미있는 발표가 두 건 있었다. 그중에서 불국사와 석굴사(석불암)에 대한 발표에서 의문점을 던졌는데 두 절이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 일개 귀족이 고작 부모를 위해 짓는 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신심이 강하다한들 불상이나 조성하는 정도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먼저 결론을 이야기하면 그 건 틀린 생각이다. 먼저 불국사와 석불사가 아무리 위대한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국가 차원에서 관리할만큼 중요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의 문장을 두 절의 가치가 없단 말로 오해 말기를 바란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절은 황룡사나 사천왕사, 흥륜사 등의 '성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