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과 농업사 공부가 꽉 막혀버린 상태입니다만, 지난주 토요일 신라사학회 발표를 듣고나니 7세기 후반 국제전에 대한 정리도 미뤄져 있더군요. 학계에선 7세기 후반의 국제전을 삼국통일이라고 부르는 게 상례지만 통일이라고 하고선 바로 뒤에 발해와 신라의 병립을 남부국시대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하나 다지고 들면 매우 모순적이지요. 통일도 전면적인 통일이 아니라 대동강-원산만 라인의 통일 그리고 남북국의 병립이라니.. 개인적으로 취하지는 않지만 참 재미있는 학설은 한규철의 주장이었습니다. 발해가 서기까지만 통일신라고 이후는 대신라와 발해의 남북국시대라는 것이죠.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고민이 엿보입니다. ㄱ걸 취하는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죠. 한참 변태섭(그는 고려시대 ..
글을 올린 것이 한 달 전, 원래 여기의 주종목인 삼국사기에 모자이크 하기는 매우 오래전부터 쉬었던지라 이대로는 모자이크 영양 실조로 말라죽겠다 싶어서 다시 재개하자 맘먹고 뭘로 포문을 열까 고민하다 양원왕 말의 북제와의 외교로부터 시작해보자 생각하고 삼국사기를 디지는데 이 기록이 안나옵니다. 엥? 혹시 평원왕인가? 아녀 그땐 수나라여. 그럼 안장왕? 그땐 내란기여. 혹시 안원왕 말년이 아닌 재위 중 일인가? 뭐 하도 안읽었으니 연대 정도는 틀릴 수 있지. 안나옵니다. 걍 번역본을 보자. 그래도 안나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머리 속에 넣었던 기사는 어디 기사란 말인고?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북사에 실린 기록입니다. 왜 이 기사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있었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천보天保 3년(A.D.5..
오늘 춘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몽돌님 글을 읽다가 복원 이야기가 나와 잠시 페북에서 댓글을 주고 받았지요. 워낙 이쪽 업계가 복원이란 단어에 데인 것이 많아, 덩달아 짐순이도 좀 까칠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암튼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졸립고 더워서 출력이 안납니다. 한랭지 사양의 모빌슈츠는 여름에 괴로운 겁니다. 걍 08소대 찍는 기분. 여태껏 중국에 가본 건 딱 두 번입니다. 처음으로 물 밖 나가본게 2009년 듕궉의 만주지방(얼마전부터 동북지방이란 용어 안씁니다). 두번째가 2010년 서안-북경인데 여기 처음 방문지부터 좀 깼습니다. 이름이 다르지만(약간 위치도 다르다지만) 크게 봐서 주나라의 호경, 진나라의 함양, 한당의 장안이 같은 지역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진의 아방궁 복원지라는 곳을..
초록불님의 페북 글을 보는데 신문기사 하나를 인용해두셨더군요. 불고기 이야기가 나오길래(고기다! 고기!!) 뭔가 보니 그동안 불고기가 고구려때부터 내려온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진 것 같군요. 아니 짐순이는 왜 그런것도 모르는거야? 불고기 원조=고구려 맥적? 역사로 둔갑한 낭설 위의 기사는 대략 이렇습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수신기"라는 책에 불고기라는 음식이 고구려의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기록을 보면 고구려의 고자도 안보이고 이건 유목민족의 통구이 요리를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불고기를 고구려의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겁니다. 마침 수신기라는 책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 기사에서 인용하는 것을 그대로 옮겨봅니다.(세설신어도 안갖춘 마당에 수신기까지!!) “호상과 맥반은 적인의 기물이다. 강..
파,촉, 월수(사천성), 울림(광서장족자치구), 일남(베트남 북부), 요동, 낙랑의 풍습을 살펴보면, 주나라 때는 머리를 뒤로 넘겨 묶었지만 지금은 관을 쓴다. 주나라 때는 거듭 통역으로 이해시켜야 했지만 지금은 "시경"과 "상서"를 낭독할 정도다. - "논형" 58, 회국편 처음 발견한 사료는 아니고 이전에도 알려진 사료입니다. 국편에서 나온 "중국고대사료집성"에도 인용되어 있죠. 어제 이성규 선생님의 낙랑에 대한 논문을 도서관에서 읽고 있는데 거기에서 다루고 있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마침 지근거리에 "논형"이 있길래 펴보니 위의 글과 같은 내용이군요. 중국출신들이 꽤나 있음에도 군 설치시에 속리로 쓸 사람이 없어(단순 문자이해도 문제가 아니라 중국정부 입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는 겁니다. 애초에 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