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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오른쪽은 HP TX-2107 TM2, 왼쪽은 기가바이트의 S1080입니다.현재 쓰고 있는 주력기종들이죠. 둘 다 윈도 태블릿입니다.굳이 비교하자면 2107은 F15K 왼쪽은 F16입니다. 며칠 전에 ITX에서 2107이 든 가방을 떨어뜨렸습니다.아주 높은데서는 아니고 의자에서 바닥 정도죠.그날, 그리고 다음날은 모르고 넘어갔는데 3일째 되는 날 상판의 마그네슘이 휘어져 상판이 벌어져있던 것을 발견햇습니다.(아니 파우치는 장식이었단 말이냐! 그렇다면 나는 높으신 분이란 말인거냐!!)아침에 출근하며 용산 센터 들렀다 돌아와 찍은 겁니다.요즘처럼 덥고 에너지 소모가 심한 날엔 주로 1080만 들고 다닙니다.사무실에서야 자판을 쓰지만 돌아다닐 때는 주로 화상키보드를 쓰는데만약 오자가 많다면 여지 없이 화상키보드..
농서의 노래 - 진도 흉노를 소탕하겠노라 자신을 돌보지 않더니,무장한 오천 군대가 오랑캐 땅에서 죽어갔다.가엾다. 무정하 강변에 널린 백골들은몸철 안방에서 꿈에 그리던 사람이었다. 요즘에야 전쟁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있지만 간만에 한 번 생각이 나서 써봅니다.어찌보면 오래전에 쓴 글 두려움을 잊는 법, 양주의 노래의 속편이기도 합니다.위의 시는 당나라 시인 진도의 농서행입니다. 흉노가 나오는 것을 보면 한나라를 무대로 삼고 있습니다.물론 이 고전의 시대에는 흉노는 오랑캐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무정하, 황하의 한 지류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르도스 지역을 두고 다투던 한대를 다루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무장한 오천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는데 한이 흉노와 싸울 때,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합니다.이런 일을..
고전 농담중에 아들이 밥을 먹다 남기니 그것을 보던 아빠가 '내가 네 나이때는 쌀이 없어서..'라고 했더니'밥이 없으면 빵사먹던가 피자를 시켜먹지'라고 대답하는 이야기가 있다.이것이 농담의 세계라면 그냥 웃고 넘어갈 이야기다.그러나 무언가를 해석하는 데 이런 얘기나 나오면 이것은 한여름의 괴담이 된다.나이 먹을만큼 먹고,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 이러면 답이 없다. 역사적 맥락을 잘 읽어야 한다는 말은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깊게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보다 발전이 매우 늦었다.그나마 따라잡기 시작한 진흥왕대에도 그 문화적, 기술적 토대가 충분치 않아가장 중요한 사찰인 황룡사를 짓는데 초기 기술은 고구려의 영향아래 있었다.그리고 경주의 랜드마크가 된 9층탑도 아시다시피 백제장인 아비지..
10년에 북경과 서안을 다녀오면서 만리장성을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아주 어릴적 가졌던 부푼 희망은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공부에 방해 되었던가 뭔가 사고를 쳐서 텔레비전 시청이 전면 금지되었던 중2시절에유일하게 허락된 것이 교육방송에서 하는 한달짜리 만리장성 다큐였습니다.(이것마저 금지했다면 정말 큰 사고칠 기세였을까요? 기억이 안납니다)그때만해도 나중에 중국에 갈 수만 있다면산해관에서 서역의 끝까지 만리장성을 걸어서 주파하겠다는 야망을 가졌는데고딩들이 서울우유 먹다가 연세우유, 건국우유, 나중엔 삼육우유로 간다는 농담처럼야망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고 역사를 이해하는 관점이 너무 달라져 있었습니다.그래서 정작 만리장성을 간다는데 흥도 안났습니다.그 시절이라면 감격하다 못해 심장마비에 걸렸을텐데요.마침 두 군데..
내가 쓰러지면 내가 말이 너무 많다구? 난 직업이 래펀데?그럼 무슨 얘기할까? 사랑은 아이스크림이라구?먹다가 이빨 다 나갔다구? Allow me 꼴초에겐 담배 드라이버에겐 유류세통화할 땐 패킷에 전국민에겐 통일세우리가 꼬라박고 들이붓고 끝없이 희생할 때너희 아들들과 딸들은 LA공항에 면세이것을 글로 쓰면 유언비어 유포죄이것을 책으로 내면 불온서적 출판죄이것 때문에 모이면 불법 집회가 된다네이것 때문에 모이면 불법 결사라네 사주에게 이익이 될 땐 건실청년으로사주 이익에 방해 될 땐 불순분자로회사에게 이익이 될 땐 불량이 정품으로회사 이익에 방해 될 땐 정품이 불량으로이것을 글로 쓰면 언론의 자유이것을 책으로 내면 출판의 자유이것 때문에 모인다면 집회의 자유거기서 가스통을 휘두른다면 결사의 자유 지천에 널린..
지금 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 중 상당수는 문화-연예의 문화 범주에 넣고 있다.그리고 다음뷰를 들어오면 제일 먼저 보는 곳이 IT인데처음에 구경만 하던 시절에는 IT 범주에 종교 애기가 나오고그냥 사진 찍은 게 올라오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게임이야 그렇게 관심도 없는데 나름 프로그램이니 그러려니 하는 쪽이고.(또 게인산업은 IT산업이기도 하니까) 앞에서 이야기한 IT쪽은 그나마 낫다.09년에 열어놓고 방치한 블로그 살리려고 글을 올리다 보니 글의 자리가 애매하다.간혹 올리는 전시안내야 공연전시가 있다.책은 그야말로 편하다.그런데 역사 이야기는 쓸 곳이 없어 그저 문화로 고정해두고 있다. 뭐, 세밀한 역사 얘기가 그렇게 많이 올라오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주로 이것저것 다 하면서 역사를 건드는 분들도 많고(..
일부 선생님들은 한국고대사 연구가 정체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하십니다.그러나 매년 나오는 연구성과는 날로 풍성해지고또 연구자의 수도 다른 분야에 비해 그리 적은 것만은 아닙니다.그럼에도 저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뭐랄까연구 주제는 다양한데 보는 입장이 너무 단선적이랄까한가지 방향에 편중되었달까저금 다르게 보는 입장, 다른 연구 방법론이 나오면 꺼려하는 듯한 면은 있습니다.원래 학문은 좀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다 싶을 정도로 파고드는 면이 있어야 하기에그저 그런 거 아니냐란 반응이 나오기 쉬운데제 생각은 삼국사기만 보고, 우리 학파 논문만 보고, 고대사만 봐서 그렇다는 것에 가깝습니다.기술사를 한다면서 기술 자체에 관심이 없고,대외관계사를 한다면서 관련국가의 흐름을 알지 못합니다.그리고 다양한 것을 접해야 ..
십수년을 넘게 역사책만 후벼파면서몇가지 가지고 있던 생각 중의 하나가'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못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에 대해 존경심을 갖자'였다.죽을 것을 알면서도 구식 화승총을 들고 용감히 일어선 의병들,먼 만주에서, 시베리아에서 풍찬노숙을 하던 독립군들,감옥에서 극한의 고통을 맛보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목숨을 바쳐 싸우던 군인들,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난 투사들.그 상황에 마주하였을 때, 그렇게 싸울 자신이 없다.아마 조용히 입다물고 숨어살았을 것이다.비겁하지만 그렇다고 꺼삐딴 리의 삶은 못살 것이다.그래서 그런 삶을 살아온 분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인간으로서, 역사가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음지에 쳐박힌 인간에 끌려 역사공부를 시작했는데나이..
변태섭 - 요즘 한국사의 붐이 일고 있는데, 그것이 순수하게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라면 환영할만 합니다. 또 각종 시험에 국사과목이 많이 끼이는데, 국사공부가 시험과목으로서 억지로 강요된다면 도리어 학생들은 국사를 지긋지긋하고 귀찮은 것으로 여기게 될지도 몰라요. 김원룡 - 동감입니다. 최근에 치른 대학입학 예비고사의 국사문제를 보니까,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과연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 자신도 모를 게 많아요. 변태섭 - 얼마 전 제주도의 어느 여고 교사한테서 내게 편지가 왔는데, 예비고사 국사문제 중 어느 하나를 지적해서 항의를 했더군요. 나 자신도 모를 뿐만 아니라 아마 국사학자 모두에게 물어도 모를 그런 문제였어요.(웃음) 김용덕 - ‘어려운 국사’가 되어선 안되지..
포도로 빚은 좋은 술 야광배에 부어, 마시려니 비파소리 말 위에서 자지러진다. 취해서 모래밭에 누웠다고 그대는 웃지 말라. 예로부터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 왕한, 양주사 당은 국제적인 국가답게 전쟁도 (당시에는) 전세계적으로 벌였습니다. 동쪽의 고구려, 백제, 신라뿐만 아니라 북으로는 돌궐, 서로는 티벳,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 그리고 아랍과도 싸웠지요. 그래서 전쟁에 참여한 문인들의 시가 많습니다. 전쟁에는 반드시 군인들만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참모역할을 해야할 문관들도 필요하지요. 전투만 벌이는 것이 아니라 지배까지 해야하니까요. 바로 그런 전선에서의 삶을 어떻게 견뎌내었는가에 대한 시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위에 적힌 시는 병사들의 두려움과 그것을 이겨내려 안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