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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한국고대의 시대구분선으로 통일전쟁기를 꼽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 기존의 나말여초가 시대구분의 획기로써 더 적절하다고 본다. 대개 통일신라의 관료제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런입장도 나름 타당하다. 그러나 표면적인 관부 설치와 그 구성, 명칭의 일부만 당제인 근본적인 구조도 관료제라고 할 수 있을까? 신라의 국가운영시스템이나 사회구조는 관료제의 원천기술격인 당율령제와는 다르다. 극히 일부는 빼고 표면적으로라도 어떻게든 유사한 체제를 구축하려한 일본과도 다르다. 발해? 완전히 뿌리까지 뽑혀나간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나? 차라리 미야자끼 이찌사다가 위진남북조 시대의 귀족들을 일러 관료제의 탈을 쓴 신분제라고 하는 게 실상에 가깝다. 만약 통일전쟁기가 ..
문헌사보다 고고/인류학이 정치체간의 위계 이야기를 할 때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고학을 포함하는 서구권 인류학에서 메소포타미아나 중남미의 고대 유적 조사를 통해 많은 방법론을 재시한 건 사실이고.. 오늘 무슨 발표를 듣다가 중부지방 주거지의 크기를 통한 각 정치체의 위계질서에 대한 언급을 들을 때 놀랐다. 도판은 극히 아름다웠으나 그게 현실적으로 맞는 이야기가 될까? 고고학 발굴 결과를 놓고 본다면 가야 소국들의 무덤 크기에서 무진장, 그러니까 전북 동쪽의 고분 크기가 가장 뿅뿅하다고 한다.(확인해보라고 보고서를 들이밀어도 소용 없다. 미노프스키입자를 처음 만난 연방군꼴이다..) 그것으로 따진다면 소위 후기 가야연맹에서 우/존/쎄..한 곳은 고령이나 함안, 감해가 아니라 무진장..
이태진 선생 글을 읽다가 깨달은 것인데 해방 이후 연구사에서 신라 하대는 매우 어려운 시대였고 중대는 상대적으로 평온한 시기였다고 보던 관점은 근본적으로 재검토 해야 한다. 물론 신라하대 중에서 진성왕이 세금 독촉 한 이후 정말 난장판이 된 것도 맞고, 왕을 비롯해 왕족들 계보 그려놓고 누가 누굴 죽였나를 살펴보면 아침드라마 이상이다. 그런데 정작 전체 신라인에게 치명적이었던 자연재해는 그 융성하였다는 중대에 집중해서 일어난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왕경의 높으신 어른 누가 죽었다, 임금님이 비명회사를 했더라는 먼나라의 이야기다. 21세기 한국인이 대통령을 실감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어차피 괴로운 건 정쟁이 있으나 없으나다. 그것이 고대 율령제의 무서움이다. 헌강왕이 산에 올라 경주의 ..
누구 책이더라 invitation to archaeology라고 고고학 개설서가 있다. 초반부에 토층 그려놓고 그것의 층위를 설명하는데 그땐 몰랐는데 지금보니 매우 도움이 된 책이다.(물론 첫장만 읽..읍읍!!) 정상적인 경우 가장 위에 쌓인 흙층이 가장 최근의 것이고 가장 깊은 곳에 쌓인 흙이 가장 오래된 시기에 퇴적된 흙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뉴스에서 보는 어디어디에서 어느 시대의 어떤 유적이 나왔다고 하면 이 흙의 페스츄리를 걷어내어 찾아낸 것이다. 거기엔 언제 누가 왜 어떻게 묻었소..라는 친절한 표지판은 존재하지 않는ㄷ.. 아 가끔 비석이나 묘지명(무덤안에 묻는 글귀)이 있지. 하지만 개개는 그딴 거 없다. 아무렇게나 포크레인으로 땅을 후벼 파서 거기서 나온 유물을 눈짐작으로 이게 언제 물건..
짐순 폰 데그레챠프 "소양해는 북방의 침입을 막는 천혜의 요새였다." ■ 코코로뿅뿅대 뉴타입연구소 30일 '맥국사' 학술회의 【삭주=뉴액시즈】 곽달호 기자 = "북방의 침략자들은 소양해를 건널 엄두를 못내 회군하기도" 20일, 지구연방군 제203마도MS대대 대대장 짐순 폰 데그레챠프 중령은 "조선고고연구에 실린 대동강문명특집호와 맥국사 연구성과를 분석하던 중 삭주의 소양해가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것과는 달리 한국전 춘천전투 뿐만 아니라 한무제로부터 청나라의 침략에 이르기까지 북방의 침략을 막는 중요 방어선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북방의 침략군이 한강을 건너면 장수가 죽는다는 전설과, 적군의 탐문시, 한강 이남으로 수천리나 펼쳐진 산악지대가 있다는 말에 포기하곤 했다는 여러 사..
한국고대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고대국가가 성장하는 과정 속에 항상 크고 작은 제지정치체가 왕실의 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전쟁을 꼽습니다.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던 정치체들이(그걸 소국이라 부르던, 부라고 부르던 상관 없습니다) 전쟁을 통해 중앙집권화의 길을 걷는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 설명은 많은 부분에서 타당한 관점입니다. 왕실이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던, 각 청치체의 회의에서 의장 역할을 수행하던 왕실이 속한 정치체가 자기들 보다 약간이나마 우위에 있다는 것만은 인정한 상태에서 전쟁과 걑은 국가대사의 경우 왕실이 주도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빠리를 중심으로 한 일 드 프랑스Île-de-France의 영주가 왕이 되어 봉건국가인 프랑스를 대표하는 것처럼 말이죠. 메로빙거부터 부르봉에..
여기 지도 한 장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만든 1:50,000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근현대에 대대적인 국토 개조사업이 벌어지기 이전의 한반도 지형이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실제로 과거 한반도의 지리적 환경이 어떠하였나를 살피는데 있어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정밀지도입니다. 해당 지도는 1920년대의 춘천입니다. 만약 춘천에 사시던가 자주 드나드는 분이시라면 원래 알고 계시던 것과 많이 다른 면을 볼 수 있습니다. 네, 과거 연식이 오래된 분들이 춘천하면 떠올릴 호수가 없군요. 일제강점기 후반에 현재 춘천시 북쪽에 화천, 춘천댐이 세워지고 춘천 아래쪽에 의암댐이 생기기 전, 춘천을 관통하는 북한강의 모습이 지금과 다릅니다. 강은 매우 좁고 가늘고 현재 도심 가운대에도 ..
일제강점기에 조선사를 만들며 자료집으로 내놓은 지나사료초가 있었고, 지난 세기 후반 단대 동양학연구소던가 이십오사 동이전에 대한 초록집을 내놓았지요. 여기까지는 원문만 실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국역함과 동시에 역주를 단 중국정사조선전을 내놓았습니다. 국내의 연구성과가 미비한 상황에서 참 많은 도움을 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 조만간 동북아재단에서 중국정사 조선전 책이 나올 예정입니다. PDF로 나올 지는 알 수 없으나 나온다고 치고(외국전과 같이 보통 공개될 확률이 높죠) 번역은 완료되었고, 원래 지난 가을에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아시다시피 책 만드는 게 늘 정확하게 일정대로 가는 게 아니니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지요. 이건 국내의 최신 연구성과를 다룬 것이니 국편의 자..
얼마 전에 재개장을 한 춘천박물관의 해설판과 도록문제로 일부 지역인사들이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 춘천의 고대 정치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맥국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예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강릉의 하위집단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주된 논지이다. 그래서 이 작자들은 일부 학자놈들이 춘천의 지역정체성을 무너뜨리고 말살하고 있다고 두 주먹 부르르 떨고 있는 중이다. 과연 박물관은 춘천의 지역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일까? 본론 들어가기 전에 말하자면 박물관측도 애매모호하게 설명함으로써 논란의 단초를 재공한 건 문제다. 영서'예'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좀 더 명확히 썼어야 했다. 1. 맥국이란 무엇인가? 삭주(朔州)는 가탐(賈耽)의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동남쪽이자 예(濊)의 서쪽은 옛 맥..
춘천으로 돌아오기 전, 지인과 놀다가 오늘 마감한 원고 하나 이야기를 했다. 당나라 사람이 펴낸 책이 어떻게 일본에서 발견되었는가, 필사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닭다리를 뜯으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가지고 있는 필사본의 사진과 그걸 어떤 작업을 하는가 블라블라. 지인은 중국 책이 일본에 필사본 하나만 전해진다는게 신기하다고 했다. 과거에 소위 애국지사들께서(퉷!) 김부식을 욕하던 논리 중에 하나가 삼국사기로 악의적 왜곡을 한 다음 진실 규명이 두려워 분서했다는 거다. 물론 삼국사기에 바탕이 된 고기들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분서로 인한 망실이었다면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사실 라노베고 일연의 삼국유사도 웹소설이다.(귀, 귀여니, 일여니.. 응? 모에한 스님이닷!) 왜냐고 동명왕편과 삼국유사는 삼국사..
이@일이가 이제는 국어학계까지 디스를 하고 있고(ㅆㅂ, 식민국어학이래.. 이렇게 모에한 ㅆㅂ色姬는 정말 첨이다!!) 도가놈이 장관이 되었거나 또 다른 ㄱ모 장관이 사실 그쪽 계열이라던가 하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우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있다. 요즘에야 안하지만 종종 한국학계는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했다는 비판을 했었다. 이미 돌아가신 할배들이 그딴 거 할 시간에 논문을! 이랬던 게 컸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그 분들 중 한 분이 학예회라고 했던 소장파 학회도 이제 중견이 되었다.(그 말하신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참석한 역사학대회에 나타나 그 학회지 한묶음 사간 건 나름 변화) 사실 그 아랫 세대들은 대중활동하는데 두려움이 없다. 그리고 미진하다면 미진할(논문을 풀어쓰면..
너무 방치플레이하는 것도 좋지 아니합니다. 감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감을 한트럭 사와야 할 지경이 되었거든요. 이고 시작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2회에서 놀고 있네.. 증말루.. 1. 아니 시조 엄마가 곰인데 숭배하지 않을리가여. 호랑이는 무서움의 상징이지만 곰은 의외로 사람과 유사한 점이 많아 세계 각지에서 인간과 가장 유사한 생명체로 여겨지고 숭배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에외는 아니죠.2. 바람, 구름, 비 자체가 농업의 필수요소 3종 세트죠. 물론 유목사회에서도 이게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4. 하늘에서 내려왔던 바이칼호수에서 왔던 하여간 어디선가 나타난 능력자가 땅따먹기를 하고 토착세력과 혼인을 해서 권력을 안정시킨..(이 모빌슈츠는 환국의 위대한 역사를 부정하는 女ㄴ이다!!) 말꼬리 --..
올 초에 해보려다 못한 것이(딴짓하느라) 진단학회 한국사부터 고대사 개설 서술을 한 번 비교해본다는 거였는데, 이래저래 못햇다. 언젠가 해야겠지만 매우 빨리 정말 그걸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다. 지난 세기의 한국의 고대사학계는(귀찮다! 학계라 줄여보자) 식민사학의 극복이라는 명제를 위해 싸워왔다. 실제로 학자들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역사학계를 짓눌러왔던 주장들을 성공적으로 반박해왔다. 과연 학계가 언제부터 식민사학 극복에 성공했는가, 아니 시작은 해방직후부터였으니 언제 그 과업에 성공했는가라는 흐름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국편한국사(구판 25권)가 나오는 70년대 후반에서 한국사강좌 고대편을 거쳐 한국고대사론이 나오는 80년대 후반을 주목한다. 일본인들이 한국의 독자적 선사..
http://rgm-79.tistory.com/714 이 글의 후속글이지 말입니다 2014년에 고대사 개설을 올린 이후로 시간이 지났습니다. 한글화일로만 만들던 것을 이번엔 인디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글에서 궁국의 도를 깨달았으니(개뿔!) 이젠 다른 도를 얻어야겠다는, 그러니까 머리에 120mm 자쿠 머신건 쳐맞은 객기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인정할 수 밖에 없군. 내 어림으로 인한 과오라는 것을" 저번엔 관악과 신촌이 어지러이 섞였다고 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봉의산과 소양강의 콜라보에 불과하군요. 뭐, 대단한 걸 기대하셨을리는 없지만, 그럴꺼면 ISBN코드를 받았겠지. 아래는 지난 버전의 머리말을 살짝 고쳐 수록해봅니다. 졸립고 방전이라 더는 길게 못쓰겠네. 17. 04. 15 수정본으로 교체17. 0..
고구려사의 귀속문제는 동북공정이 끝난 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점점 더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주장이 중국내에서는 공식입장으로 굳어지고 있고, 그에 입각한 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껍니다. "아직 그거(동북공정) 안끝났어?". 최근 신문 기사 그런데 사람들이 간과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동북공정은 세기말에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까이는 20세기 초 일본의 만주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논리(구체화된 것은 국제연'맹'의 조사단 파견에 대응한 중국학계의 보고서 제출), 멀리는 지금으로 부터 천 삼백년 전, 북제계열 관료들이 수의 조정에서 고구려 정벌론을 펴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구려는 본래 기자箕子가 책봉을 받은 땅으로, 한漢·진晉 때에 모두 군..
이 문제는 사실 고대사를 둘러싼 시대구분의 문제입니다. 고대의 종언을 삼국통일전쟁으로 볼 것이냐, 후삼국과 고려의 재통일로 볼 것이냐. 지금도 널리 인정받는 설은 나말여초설입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꾸준히 삼국통일전쟁기를 고대와 중세의 경계로 보는 설이 많이 나옵니다. 통일신라와 발해를 중세에 편입시키는 것이지요. 또한편 이는 고대국가성격론과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체제설과 (지금은 쪼그라드는) 연맹왕국설이 대립하고 있어 보이는 형국이지만 사실 은근히 삼국초반부터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가졌다는 설의 영향은 남아있습니다. 삼국통일기분기설의 일부는 그 부분에도 영향을 받았지요.(삭주에서 멀리 보자면 그렇다고 해두죠. 면피용 발언) 학설사라는 흐름에서 보지 않고 이 논쟁에 끼어들면 일부분만 보기 쉽습니..
발해의 멸망은 백두산 탓이다?? 언젠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냐고 묻고 싶습니다. 저 글을 쓴 이후 백두산의 분화에 대해서 알고싶은 분들의 유입이 고정적으로 생겼습니다. 대개의 경우 백두산의 폭발로 사라진 신비의 나라 발해를 생각하고 들어셨겠지요? 그보다 차라리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보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 글을 쓴 게 2012년, 그때보다는 화산에 대한 지식이 약간 늘었습니다. 저 때도 화산이 외/계/충/격/보/다(!!!) 더 지구 기후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화산이라는 게 생각 이상으로 만만치 않은 놈이라 보니 이 보다 더 강력한 요인은 태양, 대륙이동으로 인한 해류의 변화 밖에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저 글을..
가장 오래된 물건을 찾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씨아는 뭔지 몰라서 찾아봤네요. 목화의 씨를 빼는 기구라고 하네욤.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삼국시대엔 목화가 뭔지도 몰랐다는 말로 대신하죠. 우리는 마나 삼베나 수초로 만든 옷을 입었다고!!(고구려 건국신화냐!) 1. 청동검은 청동기 시대인데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저 비파형동검은 세형동검보다 더 오래된 물건이죠.2. 철제 말투구는 삼국시대 후반부 물건입니다.3. 씨아는 목화씨를 빼는 것이니 문익점이 활동한 고려 후기 이후로는 올라가지 않겠군요.4. 기와.. 이름이 있잖아여!이거 고급만 문제 풀까요? 날로 먹는 건 좋은데 초등 문제니 흥이 안나넹.(레빌장군 : 네 냔이 게으른거다!!)
평소 지론이 안악 3호분의 벽화고분을 근거로 고구려 군사사 논문을 쓰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 그림을 토대로 병종분석하고, 무장 검토하는 것은 오래전엔 자료부족으로 어쩔 수 없었으나 2010년대에 이거 하면 재떨이 맞기 딱좋다. 하야시 미나오의 화상석 책을 보면 딱 물고기들이 무기들고 용왕의 행차를 시위하는 그림도 있고(화상석 그림이니 당근 안악 3호분보다 오래전이다) 이게 원래 고구려 사람도 아닌 얼마전에 망명한 전연의 관료 동수의 무덤이니 고구려 물이 들면 얼마나 들었겠는가. 물론 부카니스탄의 위대한 친구들은 이걸 고국원왕의 무덤이라 주장한다 하더라. 근데 평양 앞도 뚫린 판에 황해도에 왕릉? 미쳤냐? 국내성에 묻혀서 고국원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 시조이래 하늘에서 내려왔고 내 즉위 정통성이 주몽이..
짐순이는 천 권이 넘는 책을 짊어지고 다닙니다. 무슨 이데온만한 크기라서 그게 되는 게 아니라(에이 19미터 밖에 안되는 왜소한 기체지요) 전부 PDF로 된 형태의 책입니다. MICRO-SD카드 한 장에 그게 다 들어가지요. 공자가 봤으면 짐순이는 현자중의 현자로 보일 겁니다. 다섯 수레 따위로는 그 책을 셀 수 없거든요.(삼국사기를 읽을 때 만나는 한문 덮인 그림도 삼국사기 PDF에서 따온 겁니다) PDF가 아니라 E-PUB의 형태로도 많은 전자책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서양 방식의 제책방법으로 만든 책을 기본형태라고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양장본이냐 반양장본이냐로 나뉘어 지지만 2017년 현재 지구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책의 형태이긴 합니다. 과거의 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