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삼국사기 이야기 (809)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위서僞書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가짜 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전적 의미는 단순합니다. 그러나 역사학에서 보는 위서는 사전만큼이나 명료하진 않습니다. 왜 위서가 나오는 걸까요? 2016년에 짐순이가 그럴싸하게 책을 한 권 썼다고 합시다. 그런데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며 말하기를 ‘이건 수백년 전의 위인인 안문호 선생의 글인데 이제 발견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세상에는 연방의 하얀 악마 안문호 선생의 저서가 나왔다고 좋아할 겁니다. 물론 2016년엔 갖가지 검토 수단이 있어 먼저 원고의 상태, 사용된 어휘, 구사된 문법 등을 따져 위작 여부를 파악하겠지만 과거에는 없습니다. 어지간한 경우 그냥 안문호 선생의 저작 목록에 들어갑니다. 요즘같이 저작권이 중요한 시대에 이런 행동은 정신 나간 짓이지요...
나름 글을 쓴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보는 건 이 블로그의 거친 글이다.(그렇다고 나머지 글이 또 정연하진 않아) 대다수는 보여주지 않고 혼자 끙끙거리고 있다. 지금 쓰는 것은 안풀릴 때는 원고지 30매를 4달 걸려 쓰기도 하고, 딱 (b5 사이즈로 놓고 글을 쓴다) 세 줄 고치는데 책을 다섯권을 펼쳐 놓기도 하고, 딱 한 줄 쓰느라 책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작업 중인 하나는 10년 잡고, 또 하나는 쓰다가 늘 그렇듯 짐순이 선에서 폐기할 지도 모른다. 참 전업으로 글을 썼다면 "스무살까진 살고 싶어요"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헐 19살인뎁) 대단한 사람도 아닌 짐순이조차 글을 쓰는게 매우 조심스럽다. 사실 아무렇게나 쓰자면 원고 30매는 두어시간이면 쓰는 글이다. 그럼에도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으련만,..
죄송합니다. 아주 오래간만에 일요일에 글을 쓰는데 많이했던 봄노래의 반복입니다. 듣기좋은 꽃노래도 세 번 하면 질린다는데 말이죠.(물론 아이돌 마스터 노랜 하루 종일 들어도 다음 날 또 듣습니다) 미사협이라는 ㅂㅅ집단의 출현을 알리는 연합뉴스 기사(제목 적기도 민망하다) 오늘 기사를 보니 한군현 문제로 촉발된 문제는 드디어 환단고기 신봉자들의 엽합체 결성까지 이르렀군요. 이건 뒤에 할 짐순이의 이야기보다 더 반복되는 노랩니다. 지난 세기 70년대에 안호상을 중심으로 역사바로 잡기 운동같은 게 있었고, 거기서 확대된 힘은 80년대 국사교과서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일을 굳이 말하자면 시즌3 정도는 됩니다. 다만 논쟁의 중심축이 한군현으로 변한 것이 다릅니다. 아니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은 아닙니다. 정..
이건 쉬어가는 문제입니다. 이제야 문제 옆의 배점에 눈이 가는군요. 1점짜리는 반드시 먹어달라고 사정하는 점수입니다. 맞아도 크게 기쁘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배점이 높은(주로 응시자를 결정장애로 만드는) 문제를 풀 시간을 벌게 해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틀리면 의외로 타격이 큽니다. 발해의 유물을 묻는 문제는 초-중 레벨입니다. 보통은 초등학교 문제에서 그 나라의 것을 골라주세요. 또는 아닌 것을 골라달라는 문제에 출연합니다. 고등학교나 일반 대상 문제는 더 복잡한 것을 이야기하느라 출연이 뜸하게 되죠. 특히나 발해 유물로 시험에 나올만한 것은 몇 개 되지 않으니 기억해두시는 것이 좋습니다.(물론 시험 안보면 넘어가도 됩니다) 왼쪽은 상경성에서 나온 돌사자, 오른쪽은 절터에 홀로 남은 석등입..
910년을 고대로 보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많이 갈리는 듯 합니다. 아예 7세기에 중세가 시작된다고 보는 학자도 있고, 또 936년의 후삼국 통일을 염두에 두더라도 후삼국 시대는 은근히 고려시대사로 넘기는 느낌을 가지지요. 언젠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교통정리가 될 겁니다. 짐순이는 적어도 신라가 망하는 그 순간까지는 고대로 보는 입장이라 후삼국도 고대사에 넣고 있죠. 하여간 910년의 한반도와 만주 일원에는 4개의 국가가 병존하고 있었습니다. 가와 라는 그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발해와 신라입니다. 나는 궁예의 후고구려, 다는 견훤의 후백제지요. 발해는 거란에 의해 멸당당했으니 ㄱ은 통과궁예는 신라의 왕족이라 하죠. 그러니 ㄴ은 맞고견훤이 고구려 장수출신이려면 대체 몇 살? ㄷ은 통과.발해 건국 초에 신..
문제 자체는 매우 평이합니다. 삼국시대에 들어온 외래 사상이라고 해야 유교, 불교, 도교거든요. 그런데 이 중에서 전파 경로가 분명한 것은 불교뿐입니다. 유교는 중국의 한자문화와 함께 들어온 것 같은데 구체적인 시점은 좀 애매합니다. 다만 중국과 직접 맞장을 떠야했던 고구려나 낙랑과 대방군과 교류가 일찍부터 있었던 백제는 좀 빠른 시기인 것 같습니다. 신라는 적어도 내물왕 언저리부터 슬슬 맛을 본 것 같습니다. 삼국의 금석문을 보면 각국의 유교문화 수입의 시점이나 깊이같은 것이 차이납니다. 도교는? 고구려의 초기 벽화고분부터 도교의 냄새가 좀 나긴하고, 백제도 나중에 근구수왕이 되는 백제왕자가 고국원왕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추격하려고 하는데 장군 하나가 도덕경을 인용하며 추격을 말립니다. 다만 원시적인 도..
갈까말까하다가 지친 기체를 이끌고 중박에 다녀왔습니다. 이 불상 둘을 보기 위해서지요. 일시 : 기획전시실장소 : 2016-05-24~2016-06-12링크 : 중박 소개 페이지 일본불상은 나라박물관에서 꽤 많이 보았고,(거긴 상설전시의 상당수가 불상입니다) 나라를 돌아다닐 때마다 마주치는 절에서도 보았지요. 또 전에 중박에서 비와호 주변의 불상에 대한 특별전시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나라박물관에서 일본불상과 함께 중국불상도 좀 모아서 전시를 했는데 그것들을 보았을 때 느낌은 참 우리 나라 불상이 특이하네 였습니다. 중국과 일본 불상은 표정의 선이 굵습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주기도 하고요. 한국의 불상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도 종종 있습니다만 그래봐야 우리나라 전체 불상 속에서 강한 편이고..
한참 주구장창 떠들다가 요 몇년간 귀찮아서 안하는 이야기 한 번 해보죠. 역사는 모두가 상세하게 알아야 하는 것인가요? 과연 일반인이 알아야 하는 것은 어디까집니까? 필수상식과 교양의 경계는 어디입니까? 짐순이는 모두다 역사에 대해 해박해야하는가, 역사공부를 강요하는 분위기를 싫어합니다. 한동안은 만나면 역사를 잘 몰라서 죄송하다는 어른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때 든 생각은 왜 미안해하지 였지요. 역사를 많이 알면 지혜도 얻을 수 있고, 교양도 엄청 쌓이죠. 그러나 몰랐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자기 일이라면 나름 전문성도 갖춘 사람들이요. 역사와 관련하여 가장 오용되는 말이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죠. 다시 말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면 눈이 넓어지죠. 그러나 그게 꼭 모르고 살면 ..
이거 캡쳐하면서 너무 쉽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장군총입니다.(현재 5학년 2학기 사회교과서가 선사부터 조선 후기인데 이번 교과서 본문에는 안나오네요. 쩝..) 1. 중국 남조의 영향.. 이건 무령왕릉 이야기죠.2. 도굴. 멍청이도 할 수 있는 튜토리얼 도굴코스죠. 고구려의 고분은. 다만 부장품도 적다는 게 개그.3. 12지신. 이거 보려면 경주의 통일기 무덤들.. 김유신묘라던가. 김유신묘라던가.. 가봐야져.4. 짐순이도 전에는 서울 석촌동과 방이동의 고분이 고구려 고분과 유사하다고 적었는데 겉 모양만 비슷합니다.5. 벽화.. 후대의 봉토석실분에나 그려졌죠. 좀 찜찜해도 정답은 4번. 이건 전에 직접 찍은 장군총입니다. 크고 아름.. 엥?
이러다 문제풀이하는 속도보다, 국편에서 문제 내는 속도가 더 빠를 것 같네요.(뭐, 매번 이런 말을 하니 염치두 없지!!) 요즘 맨날 동이전 관련 기록만 보는데(어라? 이 女ㄴ이 침두 안바르고 거짓부렁을! 아냐아냐 짐순이 4월 신작 고작 3편 봤심) 순간 답이 뭔가를 고민했네요. 뭐 짐순이가 그렇죠. 지문의 첫번째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의 내용입니다. 고구려 초기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죠. 고구려가 쌈 좀 하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지요. 지금은 국내성 부근이 만주의 곡창이지만 그 시절에는 먹을 게 부족하니 쌈박질로 삥 좀 뜯어야죠. 처음에는 지들끼리 삥 뜯다가 좀 커지니 이젠 중국을 터는 상황이죠. 그래서 기사 논조가 마치 민주당 보는 조중동문 논조입니다. 지문의 두번째는 삼국사기 열전5 온달전..
2016년 4월 27일 12:30[춘천=쟈브로통신] 안문호 기자25일 강원도 춘천시 중도 레고랜드 건설현장에서 공사도중 새로운 선사문화의 증거가 출토되어 학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집자리에서 신석기 말기와 청동기 초기에 걸쳐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 짐순문화의 토기 2점이 출토되었다. 1점은 짐순문화기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토기와 뚜껑이며 하나는 그것보다 뒷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짐순문화 연구의 권위자인 마 쿠베 박사에 따르면 초기의 토기는 작은 것으로 주로 식기로 쓰였으며 하나는 대접으로 쓰인 것 같으며, 이 문화권의 특징은 차츰 큰 형태의 토기를 선호하는 것으로 학계에선 이를 큰 것이 아름답다고 믿는 문화적 특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토기제작의 특성으로는 ..
오늘까지 해야하는 일 중에 안한 게 생각나서 다시 켜고 마의태자에 대한 자료를 찾는데 논문은 없고(중대도 그렇지만 신라 하대는 정말 연구자가 희귀하다. 더욱이 후삼국과 걸쳐버리면..) 이상한 글만 나오는데 .. 이게 또 지자체의 지역역사 현장사업과 엮이니 참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이야기가 역사로 포장된다. 중국 금나라의 시조된 마의태자의 후손 어느 양반이 금나라 왕족이 신라왕족이란 속설에서 더 나아가 마의태자 후손이라 글을 쓴 거 보니 잠이 확 달아난다. 물론 애신각라 드립도 멀게는 조선후기, 가까이는 일제시대까지 올라가는 드립계의 시조새다.(규원사화의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래도 환단고기보단 올라가겠지만) 이건 역사가 아니라 창작이다. 아니 차라리 일제시대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마의..
오늘 낮에 용산을 가면서 지인하고 그놈의 개발 이야기를 했다. 마침 히터를 켠(!) 버스에서 내리니 두개의 문의 무대, 용산 철거민 사건의 현장 앞이었다. 용산역은 많이 변하고 있다. 두개의 문이 있던 곳은 쇼핑몰, 특히 면세점이 들어서고 있고, 가끔 들리던 아이파크몰도 반은 면세점으로 날아갔다. 전자상가 가는 길에 중국어 광고판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그거 안보는 샛길도 있지. 반중주의자에 가까운 짐순이는 645년 백암성이 어이 없이 함락되는 날의 주민 심정이다. 내 마음의 고향이 이상해지고 있어. 용산 역 앞이 그렇게 썰려나가고, 간당간당한 게 철도부지. 그리고 그 다음은 용산 전자상가지 싶다. 이게 가든파이브의 운명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남을 것이냐. 단군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용산개발에 있..
뭐 사실은 짐순이 자신을 위한 자료 정리입니다만 기왕 하는 김에 포스팅도 하고 혹시 필요한 분들께 도움이 된다면 또 좋은 거지요. 1.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 : 농기구조선이나 근현대 농업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면 자료는 많습니다. 농기구에 대한 책도 많고요.(대개는 조선 후기와 근현대 농기구들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공부하고 싶다면 서대문 농협중앙회 옆의 농업박물관에 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민속박물관에도 좀 있지만 아무래도 전문박물관이 낫지요. 짐순이도 농기구에 대해 공부하러 이 박물관에 가서 구경온 유치원생들 옆에 쭈구리고 앉아 열심히 필기를 했지요.(언냐 뭐해? 그림공부해... -_-;;)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대원사에서 나온 빛깔있는 책 시리즈의 농기구를 사서 보면 낫죠. 아니 농업인데 왜 농기구..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고대사를 보는 두가지 눈, 역사학계와 종교집단의 차이에 대해선 다시 말하는 것은 내키지 않습니다. 관심이 좀 멀어진 면도 있고, 가끔 적기도 했지만 짐순이의 10대 초반은 환빠로써 살아오기도 해서 말하기가 뭣한 것도 있죠. 암만 자기비판이라도 자꾸 하다보면 스스로가 너무 가여워지기도 하고.(맨날 스스로를 욕하다보니 정말 그렇게 될 것 같구.. 웅.. 아아.. 기죽는단 말여요. 히잉..) 가장 중요한 것은 순발력도 떨어지는데다 싸우는 걸 매우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굳이 비유하자면 옛날 서양영화에 종종 나오던 엽서나 편지로 체스를 두는 스탈이죠. 무슨 장기 한 판을 몇년을 두는.. . "정치외교 이득 따라 움직이는게 진짜 학문 맞나" 저 분들 중 두 분은 인사를 나누는 사이고(어쩌..
아.. 정말 답을 모르겠어여.. 그러고 보니 신라 하대 탑 얘기를 한 적이 있었군요. 답은 1번. 신라 하대 지문은 이거 밖에 없네요. 4번은 통일 직후 신문왕 즉위 초, 5번도 그 언저리. 2,3번도 통일 직후 중대 이야기. 순간 문제 올리려고 캡쳐하다 놀랬던 소녀의 가련함.
앞선 글에서 좀 길게 썼는데 이번엔 짧습니다.(저번 글보다는요!) 앞선 글의 마지막에서 고구려 관등에 대한 각기 상이한 기록 중에 어던 것을 취해야하는가 고민한다는 부분까지는 썼군요.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저번과 약간 다른 표 하나를 올려봅니다. 위서주서수서북사신당서한원삼국사기1알사대대로太大兄대대로대대로대대로대대로?2태사태대형대형태대형울절태대형태대형?3대형대형소형대형태대사자울절주부4소형소형대로소형조의두대형태부사자대상5 의후사의후사의후사대사자조의두대형위두대형6오졸오졸오졸대형대사자종대상7태대사자태대사자태대사자상위사자대형대형?8대사자대사자대사자제형발위사자소상9소사자소사자소사자소사자상위사자적상10욕사욕사욕사과절소형소형11예속예속예속선인제형제형12선인선인선인고추대가과절선인13욕살 부절조의14 선인 좀 더..
2, 3번은 어디 갔냐고요? 그건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다루고 있어섭니다. 그래서 간만에 한다고 순서도 까먹은 건 아니란 말쌈. 저 지도 안의 나라는 가야연방입니다.(지구연방과는 다르다! 지구연방과는!!) 솔직히 저기가 연방체를 이루고 있었느냐에 대해선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멀리서 봐도 좀 뭉쳐있긴합니다. 그러나 저것을 현재 연방국가들(대표적으로 미국)처럼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지고 묶여있었느냐에 대해서 짐순이는 회의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 같달까. 실제로 영역국가로 성장한 백제와 신라가 숨통을 좁혀오자 각국들은 서로의 입장(까놓고 말해 누구 주먹이 가깝냐)을 달리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야를 중시하는 것보다 부여를 그 자리에 넣는 것이 낫다 싶을 정도죠. 2번은 신라, 3번은 신라 ..
누군가 현기증이 난다며 다음 글을 재촉하는 댓글을 달 적에 짐순이는 늦은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졸음에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며 말이죠.(재촉하는 자에겐 양심의 가책을!!! 낄낄낄) 할 것은 많은데 정말 하기 싫은.. 그런 봄날 밤, 갑자기 떨어진 온도에 살짝 덜덜 떨며 '아직 잠들지 않았으므로 아직 오늘이야'라는 어느 락커의 라디오 멘트를 되뇌이며 글을 써볼까나여? 귀찮아서 번역은 한중연본 삼국사기의 것을 따다씁니다. 졸립고 귀차나여. 뿌우~~~. 원문高句麗人位 神文王六年 以高句麗人授京官 量本國官品授之 一吉飡本主簿 沙飡本大相 級飡本位頭大兄ㆍ從大相 奈麻本小相ㆍ狄相 大舍本小兄 舍知本諸兄 吉次本先人 烏知本自位 번역고구려인의 관등[高句麗人位] 신문왕 6년(686)에 고구려인에게 경관(京官)을 주었는데, 본국에서..
관등이라는 건 쉽게 말해 9급 공무원이냐 장차관급이냐, 총리급이냐 하는 식으로 해당 공무원의 지위를 나타냅니다. 지금도 공무원의 등급은 그 권한의 차이를 보여주죠.(물론 봉급도 차이납니다) 지금도 공무원의 위계는 중요하지만 고대에는 더욱 중요합니다. 바로 그 시대가 신분제 사회기 때문입니다. 돌쇠라는 사람을 가정해보죠. 거기에 그가 6급 공무원이라고 해둡시다. 그가 평민이나 천민같으면 절대 오를 수 없는 위치입니다. 단순히 공무원 위계로 치면 1~5급보단 낮고 7~9급보단 높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하나가 더 붙죠. 만약 그가 신라 식으로 진골이라면 그냥 처음 임용된 직후에 받는 급수라고 해두죠. 아마 그는 꽤 젊은 나이일 겁니다. 만약 그가 6두품 정도의 신분이라면 평생 경력의 중간입니다. 앞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