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53)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경주를 그렇게 좋아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은 고구려 후기 수도였던 평양성이었고 그게 불가능해서 대신 부여에 애정을 쏟았고 반면에 경주는 그냥 가는 곳.. 이런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서안을 가게 되고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서 경주에도 관심이 생겼달까요. (요즘, 선배는 통일신라로 전향해 광명찾으라고 하고, 후배는 전공바꾸셨어요라고 묻습니다) 작년에 총알부족도 있어서 나라에서 열리는 정창원전을 가지 못한 아쉬움과 개인적인 일이 겹쳐 경주를 찾게 되었습니다. 마치 떠나는 날의 감상같은 서문은 집어치우고 다시 포석정으로 돌아갑니다. 포석정은 그저 경애왕이 나라의 위기에도 정줄놓고 술쳐먹으러 가서 놀다가 나라를 말아먹고 자신도 죽은 역사의 무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그게..
2박 3일의 일정으로 경주에 왔습니다. 일정은 크게 정해진 건 없고, 개인적으로 안압지와 경주박물관만은 보고야 만다..만 확정입니다. 원래 여행이란 건 시간단위 일정을 짜는 것조차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정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스타일입니다. 우선 오늘은 오릉, 나정, 포석정, 감은사와 감포를 오갔습니다. 전철 하나를 놓친 끝에 서울역에서 열차를 1분차이로 놓치고 다음 차로 점심 때쯤 신경주역에 도착했습니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나가서 버스를 기다리다 택시를 타고 찾아간 오릉. 이건 동행인의 강력한 요청탓인데 사실, 신라의 상고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답사때도 여길 온 게 10년 전 한 번뿐이지 싶군요. 오릉은 신라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박혁거세)의..
쇼토쿠태자(574~622)가 세운 시텐노지(사천왕사四天王寺)는 일본 고대사의 중요한 무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587년 일본에서 불교의 도입을 둘러싸고 모노노베씨와 소가씨가 싸울 적에 불교도입을 주장한 소가씨의 편에선 태자가 사천왕에게 기원을 한 후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언젠가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요) 소가 우마코가 세운 아스카데라(비조사飛鳥寺)와 함께 일본 최초의 사원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천왕사에선 쇼토쿠 태자를 자랑스럽게 내세우지요. 잠시 쇼토쿠태자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요메이천황(용명)의 아들로 우마야도라고도 불렸습니다. 고모인 스이코천황(추고)이 즉위하자 당대의 실력자 소가 우마코와 연합하여 섭정으로 활동합니다. 603년의 12관계 도입, 604년의 헌법 17개조를 반포했고..
원래 계획은 24일은 사천왕사-오사카성-오사카역사박물관을 돈다였습니다. 작년에는 오사카에 머물면서도 오사카보다는 나라-교토에서 놀았으니 이번에는 오사카도 충분히 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숙소를 나섰습니다. 난바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 사천왕사 앞에서 내립니다. 문제는, 그러니까 이날 일정을 다 뭉개버린 문제가 여기서 발생했지요. 바로 길을 잃어버린 거. 다음날이나 마지막 날이나 얼굴이 두꺼워져 막 물어봤지만 (아니 오후부터도 잘 물어보고 다녔어요) 이 상황에선 부끄러워 물어보지도 못하고 정 반대로 한참을 걸어갔지요. 하염 없이, 하염 없이.. 저 천왕사 주차타워 간판 하나보고 저 옆에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요. 한참을 걸어가도 사천왕사(천왕사)는 커녕 인왕사도 안보이기에 겨우겨우 용기를 내어 어느..
지난 일요일에는 몽촌토성에 다녀 왔습니다. 원래는 풍납토성자리도 같이 보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어찌어찌하여 풍납토성은 포기하고 몽촌만 돌았습니다. 몸상태가 그닥이어서 자세히 돌지는 않았으나 성이 가지는 본연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으로 한정한 나들이였어요. 몽촌토성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올 겨울 특집으로 해도 모자랄 겁니다. 그런 매우 귀찮고도 어지러운 작업은 제껴두고 그냥 성을 찍은 사진만 나열합니다. 몽촌토성이 과연 왕성이냐 도성이냐 아니면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어느 것이 백제의 왕성, 도성이냐를 두고 십여년 가까이 논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아무렴 어때..에 가깝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왕성이 항상 고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조선시대를 예로 들어보면 조선의 정궁은 경복궁이었..
10월 23일로부터 26일까지, 올해도 어김없이 정창원전이 나라박물관에서 열려 거길 다녀왔습니다. 작년엔 셋이 갔지만 올해는 혼자서, 그래서 더 좌충우돌하고 헤메고 다녔지만 재미는 있었네요. 슬슬 그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첫날과 마지막날은 오사카에서 보냈지만 가운데 이틀은 나라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니 고대사와 관련 없는 사진들이 초장부터 나와도 걍 넘어가는 겁니다. ------------------------ 23일 오후 2시 비행기라 간사이공항에 도착한 것은 4시, 수속밟고 공항에서 오사카로 떠나는 난카이선 급행열차를 타고나니 벌써 저녁이 시작됩니다. 작년에는 공항이나 전철 안에서 사진이라도 찍었는데 혼자려니 쑥스럽고 얼른 숙소라 가려 해서 사진기를 꺼낼 여유는 없었습니다. 비행기 도착 때까지 긴..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서안과 북경을 다녀왔습니다. 서안에서 진시황의 병마용갱과 대안탑은 보고 싶었습니다. 북경은 그닥 관심이 없었구요. 선진시대 연의 수도로서, 혹은 위진남북조시대의 계라는 도시라면 모를까 명청이야 그닥인 것은 전공상 어쩔 수 없군요. 서안에서 가장 기대한 것은 대안탑이었습니다. 옛 장안의 랜드마크 구실을 했던 건축물인 그 것을 신라의 사신들이나 끌려왔던 고구려인들이나 백제인이라면 누구나 보았겠지요. 지금 서안보다 더 큰 옛 장안의 흔적을 알려주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중요했습니다. 6752년에 삼장으로 유명한 현장이 인도에서 귀국하여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번역하고 제자들을 기른 자은사에 세워진 탑입니다. 고종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고 하는군요. 여기엔 불경을 보..
지난 금요일 횡성에 있는 독립운동유적을 조사하던 차에 어여쁜 신라 석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 탑이 서있던 곳은 갑천면 중금리였으나 횡성댐이 건설됨에 따라 중금리가 수몰지역에 포함되어서 현재의 위치, 망향의 동산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수몰지역 출신자릉 위해 횡성호반에 망향의 동산이 세워지고 기념관을 두게 됩니다) 현재 이 탑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1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강원도내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쌍탑형식입니다. 1974년에 해체와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는데 당시의 기술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는지 금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주 매끈하고 흰 부분은 새로운 부재로 채워넣은 부분입니다. 그냥 보시면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으나 일제시대에 이 탑을 반출하려다 실패한 이후 탑이 많이 훼손되었기에 ..
8월 25일은 볼 것이 많았습니다. 24일글을 3편으로 나누었는데 25일은 5편 이상은 끌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우리 지온은 10년은 싸울 수 있다던 님께 묵념.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망했자나요!) 오늘은 볼 것 투성이인 집안의 유적들을 돌아보기 전에 예열한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짧게 나가겠습니다. 밤에 집안으로 들어와 도시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기회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발마사지도 받으러 가셨지만 워낙 오녀산성에서 흘린 땀이 많아 빨리 씻고 싶은 맘 밖에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변방 중의 변방인지라 몸조심도 해야한다는 말이 심야산보를 막았습니다. 뭐, 한밤중에도 길 전체가 공사중인데다 밤에 문을 여는 곳도 없으니 마땅히 할 일도 없지요. 왜들 그렇게 한국의 밤문화, 밤문화..했는지 ..
할 이야기는 다 한 관계로 오늘은 사진 몇 장 올리고 몇몇 이야기나 하는 것으로 넘어갑니다. 주말엔 쉬고 싶습니다. (사실 못쉬었습니다. 일하느라) 환도성을 내려오는 길, 너무 아쉬운 게 많아선지 아님 환인호를 보고 마음의 긴장이 풀린 것인지 촛점이 잡히지 않네요. 너무너무 떨고 있었습니다. 뭐, 내려가는 길만 봐도 성곽고고학 전공을 선택하지 않은 자신이 사랑스러워졌습니다. (나르시즘? 아놔 -_-;;;) 어쩌다 마주친 그대..도 아니고 계속 만나는 주거지. 그래도 ㄱ자형이 잘 남아있어서 또 담아보았습니다. 원래 온달 전공이래서 온돌 사진에 광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 성을 내려가기 전에 만난 오녀산성의 동문, 성문이라 해서 숭례문이나 흥인문 같은 반짝반짝하는 성문만을 생각사시는 여러분께 락커 문군이 ..
RGM-79는 첫 날 화를 냈습니다. 대련에서 단둥으로 가는 길목에서 산이 별로 없고 지평선이 보이는 광경을 보며 외쳤지요. '어떻게 산이 병풍처럼 시야를 가로 막지도 않아. 이거 불법이얌!' 눼, RGM-79는 강원도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이틀 째부터 신이 났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고향산천 복사한 듯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 홍천군의 산길을 헤메고 왔기에 너무 익숙한 풍경은 맘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음식만, 그러니까 그 놈의 오향만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간체만 아니면 푹 삶은 듯 머물러도 향수병은 걸리지 않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다죠. 자꾸 고구려하면 드넓은 벌판에 말달리고 활쏘는 것부터 상상하시는데 실제로 고구려인들은 산에 사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사진을 찍는 감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긴 사진을 찍은지 5년 가까이 되다보니 머얼리 머얼리 안드로메다 관광여행이라도 떠났나봅니다. 말도 사맛디 아니한 듕궉에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갈 길은 먼데 해는 저무는 걸 바라보는 오자서의 심정으로 찍었습니다. 그러나 찍은 사진이 많은 이상 두 차례에 걸쳐서 나누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4일은 환인현의 오녀산성을 방문하였습니다. 비사성이야 오토바이로 올랐지만 오녀산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계령은 RGM-79에게 오지마라, 내려가라 하지만 이놈의 산은 거부하질 않는군요. 제발 출입거부 명령 좀 내려주시옵소서.. 일행들에게 산은 멀리서 보는 것이지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항변하였지만 결국 끌려끌려 올라갔습니다. 첫날 밤을 보낸 단둥시의 호텔 앞 ..
RGM-79는 지난 8월 23일부터 27일까지 4박 5일로 듕궉 동북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대련-단동-통화-집안-백두산-장춘을 거쳐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고구려 유적과 백두산을 돌아보았는데 역시나 RGM-79에게는 고구려 유적이 더 중요하였죠. 새 글 쓰기는 귀찮고, (눼, 귀차니스트 맞습니다) 사진 정리도 늦어졌고 이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건 역사상 유래 없는 초광속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직 책상 위에 6년 전 현상안한 필름통이 굴러다닙니다. -o-) 맨날 유물이나 유적사진만 찍는 통에 여행을 떠나 찍는 센스는 극악이지만 한 번 공개는 해볼까합니다. 오늘은 첫날 사진을 올립니다. 대련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던 대련시내의 한인 거리.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