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53)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앞서 삼국의 문화적 접근도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백제가 바다를 끼고 있어 좀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황해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인적교류를 이어온 통로이기도 하지요.(관심이 있으신 분은 권덕영 선생님의 "신라의 바다, 황해"를 읽어주시어요)몇몇 기록을 들춰보면 재미난 것도 있습니다.오늘은 그 중에서 가장 앞서 나오는 인물을 다루어 보기로 하죠.낙랑군에 살았던 왕경이라는 중국인 이야깁니다. 王景字仲通, 樂浪䛁邯人也.[1] 八世祖仲, 本琅邪不其人. 好道術, 明天文. 諸呂作亂, 齊哀王襄謀發兵, 而數問於仲. 及濟北王興居反, 欲委兵師仲,[2] 仲懼禍及, 乃浮海東奔樂浪山中, 因而家焉. 父閎, 爲郡三老. 更始敗, 土人王調殺郡守劉憲, 自稱大將軍ㆍ樂浪太守. 建武六年, 光武遣太守王遵將兵擊之. 至遼東, 閎與郡決曹史楊邑等共殺調迎..
뭐 삽이 군인의 친구가 된 역사는 깁니다. 어차피 대다수의 징집병은 농민이었고 아시리아(로마 공병의 원조입니다)나 중국의 선진시대까지 군인이 삽을 들었던 역사는 길게 올라갑니다. 맨날 훈련만 할 것도 아니고 전방의 방어시설을 외부 용역줘서 만들 것은 아니었지요. (물론 만리장성 같은 건 대대적인 노역 동원이 이루어졌지요) 다들 아실만한 로마의 도로건설도 다 군단병들이 한 것이지요. 아예 4세기의 군사학자 베게티우스는 병사들이 한가해지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으니 계속 굴려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베게티우스는 병사들의 주적!) 1차대전을 전후로 삽은 참호를 팔 때나 축성시의 도구에 그치지 않고 참호에서 백병전이 벌어질 때면 훌륭한 냉병기가 되었습니다. (계속 사용하다 보면 자동적으로 날이 갈아지죠. -..
1185년의 봄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의 막을 내리는 해전이 벌어졌습니다.단노우라 해전으로 알려진 그 해전이지요.헤이케-평씨 일문과 겐지-원씨 일문이 벌인 싸움에서헤이케는 패하고 많은 이들이 물에 뛰어들어 그들의 시대를 마감합니다.그때 헤이케 편에 있던 어린 안도쿠천황도 8살의 나이로 헤이케 여인들과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지지요.그때 천황가의 3대 보물도 따라 물 속으로 들어갔다합니다.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던 상징이 사라짐과 동시에천황의 권위가 사라지고 무사들의 시대가 왔다고 합니다.그러나 이미 천황의 힘은 헤이안 중반에 이미 사라졌지요.헤이케-겐지와 마찬가지로 천황가의 후손입니다-가 권력을 잡기도 했고그 이전엔 후지와라씨가 실권을 장악했습니다.상징이 있던 없던 정치적 실권은 이미 남의 손에 놓여집니다.(..
지난주에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린 중국의 고구려와 백제계 유민의 묘지명에 대한 세미나에 다녀 왔습니다. 거기서 보고 들은 것이 꽤나 자극도 되었고, 한참 읽고 있던 것에 도움 되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뭔지는 비.밀!) 그런데 뭔가 초점이 맞지 않는 이야기도 있어서 간단히 적어볼까 합니다. 우선 가장 먼저 묘지명이란 것에 대한 개념부터 잡아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묘지명이란 것의 사전적 의미 뿐만 아니라 이 것의 성격이 무엇인가란 문제가 그렇게 이야기 되진 않았달까? 가장 두드러졌던 예가 묘지명이 사찬이냐 관찬이냐하는 논쟁이었습니다. (관찬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펴내는 것을 말하고 사찬은 개인적으로 짓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짐순이가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이 이거였습니다. 당육전에서 비서성 저작랑이 묘지명을 ..
어떤 의미로 경주는 지랄맞은 곳입니다. 천 년을 넘게 한 국가의 수도로 있었던 곳이라 모종삽 하나만 꽃아보려 해도 골치아픈 일이 비엔나 소세지처럼, 아니 텍사스 벌판의 버팔로 떼처럼 밀려온달까요? 농담삼아 화장실 수리만 하려고 해도 도장 받아야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비슷한 동네가 있네요. 로마Roma라고..) 한때 현 가카의 빠더께서 경주시민들을 전부 소개시키고 통째로 발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데 요즘은 그냥 예산 잡히는대로 한 채씩 야금야금 사들여 발굴을 합니다.. 아마 사들이는데만 2백년은 걸리겠지만 이게 맞는 겁니다. 지금 경주박물관에 널려있는(?) 상당수의 금제유물도 꼭 어느 반듯한 무덤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설마 여기에도.. 싶은 곳에서 건져낸 것도 꽤 될걸요. (직접 그것들을 발견..
진흥왕 제 24대 진흥왕은 왕위에 올랐을 때 나이가 15세였으므로 태후가 섭정을 하였다. 태후는 법흥왕의 딸로서 입종 갈문왕의 비였다. 왕은 임종할 때에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운명했다. 승성 3년(553년) 9월에 백제의 조사가 진성을 침범하여 남녀 3만9천명과 말 3천 필을 빼앗아 갔다. 이보다 먼저 백제가 신라와 군사를 합하여 고구려를 치자고 하니 진흥왕이 말하기를 "나라가 흥하고 망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만약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 다면 내 어찌 고구려의 멸망을 바라겠느냐."하고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을 고구려에 전하니 고구려는 이 말에 감동이 되어서 신라와 평화롭게 지냈다. 이 때문에 백제가 신라를 원망하여 침범을 한 것이다. - 삼국유사 기이편 방금 전에 삼국유사를 그렇게 정치적 시..
금관총 큰칼 ‘이사지왕’ 명문 확인… 고분 주인 밝혀졌다 고려와 조선 이후 단일화된 권력만을 보고 자란 분들에게고대사에 권력구조를 이해시키기가 힘듭니다.언젠가 조선시대 후기 연구자이신 분과 대화하다 싸울 뻔 했던 적이 있는데생각해보니 그 분과 저의 개념 자체가 달라요.선조가 아무리 발광을 해대도 이순신이 택할 길은죽어라 충성을 바치거나 군대를 이끌고 서울로 쳐들어가는 길 밖에 없지요.충무공에게 던져진 카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중앙집권화가 상대적으로 늦은 유럽도프랑스왕에 대해 독자적 왕국 수립을 모색한 샤를 용담공같은 이도 있지만그의 시대 자체가 왕에게 납작 엎드릴 수 밖에 없었지요.그러나 한국의 고대는 다릅니다. 고대사에서의 국가는 일부 연구자들이 착각할 정도로 정연하지 않습니다.물론 일부 기록에 담겨..
어제 아는 분의 부친상이 있어 강릉에 다녀왔습니다.결혼식은 못가도 상가에는 간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는데다(물론 그것도 중요한 일정과 겹치면 못가지만요..)오랜 시간동안 알고지낸 분이어서 안갈 수는 없더군요.자정께 돌아와 기진맥진했다가 일어나칠지도 얘기나 해볼까 금석문책을 펴보다 생각이 나서 이걸로 갑니다.(그렇다! 짐순이는 지조때로 살아가는 19세 청순가련 병약미소녀였던 것이다!!) 1919년 부여의 부소산성 안의 사비루 근처에서 불상이 하나 발견됩니다.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부처를 보살 둘이 보좌하는 삼존불의 형태이지요.가운데 부처를 본존불, 양 옆의 보살들을 협시보살이라고 부르죠.(이른바 업계용어. 알아두시면 박물관에서 편합니다..)불상이야 전형적인 삼국시대 불상입니다.대개는 불상하면 대웅전이나 비..
2010년,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지금의 부여에서 목간 하나가 발견됩니다."벼슬자리 주십시오"..백제 편지목간 발견 所遣信來 以敬辱之 於此貧薄 一无所有 不得仕也 莫瞋好邪 荷陰之後 永日不忘그냥 귀찮으니 누군가 풀어놓은 번역문을 그대로 옮기자면보내주신 편지 삼가 잘 받았습니다. 이곳에 있는 이 몸은 빈궁하여 하나도 가진 게 없으며 벼슬도 얻지 못하고 있나이다. 그러나 좋고 나쁨에 대해서 화는 내지 말아주십시오. 음덕을 입은 후 영원히 잊지 않겠나이다.그 중에 於此貧薄 一无所有 不得仕也.. 요 문장이 끌리네요.여기에 빈궁하게(찌그러져 있다보니) 가진 것 하나 없고, 일도 얻지 못하였습니다..란 말. 왕조국가의 공무원수는 매우 적습니다.억단위 중국을 좌우하던 명청시대 중앙관리가 5만을 넘치 않았다고 들었..
환단고기 3011 1. 미국인 학자 프릿츠 레이몬드에 의하면 20세기에 테헤란로라는 곳이 한국에 있었다고 한다. 아마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가르키는 것일 듯한데 이게 왜 한국에 있었단 말인가? 한국이 서아시아 유역까지 진출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 당시 한국은 북한이란 나라와 분단되어있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북한 서적에는 '김일성 장군 항일 무투사', '김정일 국방위원장 대미 항쟁사'등의 책이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북한은 당시 세계 GDP 1위, 2위 국가인 미국 일본을 개차반 내버리는 대단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 한국은 북한보다 국력이 월등했다고 한다. 3.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불렸던 미국의 전역에 수많은 한글 간판과 한국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명이 존재한다. 왜 초강대..
얼마전에 집안에서 새로 출토된 고구려 비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제2의 광개토왕비, 그 숨어있는 핵폭탄..그리고 오늘 고대사학회에서 열린 이 비에 대한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고대사학회 세미나 신발견 ‘集安 高句麗碑’의 검토..위의 글대로라면 6편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었는데이 비석을 조사한 중국학자들의 발표가 추가되면서 총 8편의 발표가 있었습니다.며칠전에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비공개 간담회가 있었고,중국에서 막 펴낸 자료집도 알려진 상황이고,요 며칠 동안 신문에서는 고구려비문에 대한 기사가 연달아 실려이래저래 분위기가 고조될 것으로 보였는데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시작된 세미나는 초반부터 만석이라아침에는 밖에서 아는 분과 이야기하며 보내다점심을 먹고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습니다.방송사 기자들은 아침에 들렀고,..
요즘 블로그에 댓글 다는 것도 참 빡빡하군요.아침에 전철에서 이웃집 방문.평소 점심 도시락 까먹고 얼른 글을 하나 올리는 편인데요즘은 그도 여의치 않고, 밤에 늦에 집에오면 뻗을 일이고..아아.. 타마코마켓 11화 볼 여가도 없다니까아~~.(젝일 타마코가 짐순이만큼 귀여워~ 씩씩거리며 보는 중입니다) 오늘 초기 종교에 대한 부분에 대해 뭔가를 만들고 있었는데(뭔지는 말할 수 없쩌염! 뿌우~~) 음.. 뭐랄까요..그걸 하다 보니 시간이 다 가넹... 작년 늦겨울에 경주에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이미 감은사지에 갔을 때 날은 어둑어둑 저물고 있었고감포 앞바다에 가니 해가 져버리고 있었습니다.언젠가 여기를 찾았을 때, 굿이 벌어지고 있더군요.워낙 그런 걸 좋아하는 아해라 혼자 멍하니 구경한 기억이 나는데이날..
중국고대사에서는 토지의 단위로 무畝라는 단어를 쓰더군요.지금 찾아본 무의 사전적 의미에서는 30평, 약 100제곱미터라고 하는군요.문제는 이런 단위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지라 감이 안옵니다.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농경지의 형태,즉 정방형이나 장방형에 가까운 농지의 단위가 아니라고 하더군요.소에게 쟁기를 끌게하는 농법이 생기면서정방형이나 장방형은 소가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 초기 운영상의 문제가 있어 아주 긴 세장방형의 농지형태를 가진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 한마리를 몰게 하여한 바퀴를 도는 거리.. 뭐 이런 식으로 설명을 들었습니다.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현재 쓰는 400미터 트랙이 아니라더 긴 트랙 한바퀴 도는 범위가 하나의 농사단위랄까요.. .여러분이 제 설명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처럼(뭐..
사실 가장 원초적인 종교의 형태 중 하나가 바로 무당의 존재입니다.무당에는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가 있습니다. 사회의 규모와 복잡성에 따라 간단한 사회는 세습무, 복잡한 사회는 강신무가 주를 이룬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세습무는 마을 동제의 제사진행자처럼 그때그때 임명됩니다.주로 집안의 가장이나 민속학 용어로 '시절이 맞아떨어지는' 사람이 맡습니다.아무 권한도 없고 신이한 능력도 없습니다.그저 그날 제례의 대표로 나와 초월적인 존재와 대화를 시도합니다. 우리가 무당하면 떠오르는 분들은 거의 강신무라고 합니다.말 그대로 신이 강림하여 신이한 능력을 받은 무당을 말하지요.이들은 전문적인 종교직능자로 특별한 신과의 감응에 의해 선정됩니다. 두어다리 건너 무당이 되신 분이 계신데그분도 멀쩡히 사회생..
요즘 역사신문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애들이나 선생님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데기존의 니들은 닥치고 들어~!(쉐릴 놈이 무대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던가)그런 수업보다 참여를 유도하는 수업이긴 합니다.뭐, 하루이틀 전에 나온 것도 아니고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저기서 시도해오던 것이긴 합니다.다만 요즘은 이런 식으로 해도 될 만큼 여건이 충족된달까? 그냥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 아이들은 잘 따라옵니다.아무래도 글자보다 사진이나 영상이 익숙한 데다이때는 글자 위주의 매체가 어렵긴 합니다.문제는 4~6차 교육과정을 거치며 밑줄 쫙~, 별표, 큰 문단, 작은 문단..에 익숙한 어른들이 문젭니다.사실 적응 못하는 게 당연하기는 한데 아이들의 감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해도저것을 만드는 과정..
원래 한국사 교재를 위해 만든 자룝니다만고고학과는 담을 쌓은지 오래라서 고고학강의를 펴놓고 유적을 골라내고백지도에 붙여서 만들어보았습니다.이따금 고고학 이야기를 해서 고고학에 관심많은 블로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사실을 고고학과 담을 쌓은 역사는 꽤 오랩니다.덕분에 고고학 이야기를 들으면 거의 외계어로 들립니다.뭐, 고고학은 개뿔도 모르고그저19세 청순가련 병약미소녀란 사실만 알아주시면 고맙습니다. 흠흠흠... 요즘 다시 한국사 수업을 축약버전으로 수업하고 있습니다만총 40시간 짜리를 6시간에 돌파해야하는 상황이라PPT로 돌파해볼라는 꼼수를 부리느라 예전 자료를 검토중에 있습니다.뭐, 나선력이 있다면야 은하보다 더 커질 수도 있으므로 이 고생은 아니하겠지요.한국사는 내 가슴 속에 있어! 언제나 죽지 않..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처음부터 말하자면 그리 말할 게 없었습니다. 진짜루~.동서울에서 10시 48분 차를 타고 가서 여유가 있겠거니 했는데마침 태풍이 오고 있었죠.그래서 10분 전에야 강릉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고겨우 시간에 턱걸이하듯 발굴현장에 도착했는데설명회는 어디서 하는지 설명이 없어 택시를 타고 몇 바퀴 돌았습니다.겨우겨우 연락이 되어 현장에 찾았는데 이번엔 택시가 자긴 카드 안되는 거라구 해서(물론 카드사용 표시를 보고 탔죠. 안붙은 건 한 대 보내고 탄 겁니다..)편의점에서 돈 찾아 와서 내고 올라가니 PPT설명은 끝나 있었습니다.원래 이 바닥이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많은지라 보통 5분정도는 알아서들 늦춰 시작하는데 말이죠.설명회장엔 들어가지 못하고 설명회장 입구에 늘어놓은 유물들만 봤습니다...
지금 이천을 지나고 있습니다. 태풍과 마주치고 왔어요.그래서 찍은 영상을 먼저 공개하기로 하죠.글과 사진은 밤에나 가능하겠습니다.요 영상은 발표회장에 나온 5~6세기 신라토기들이죠. 화면 후반에 유물을 만지는 손들이 나오는데 이 방면 전공자들이라할 수 있죠.일반적인 관객들은 아닙니다. 덕분에 삼국사기 읽기의 지증왕시리즈는 앞으로 이어집니다.그나저나 고속도로에서 와이브로 둏습니다. 캬캬캬 그런데 다음뷰 장애인지 지우고 다시 올려도 등록이 안되는군요.----이제 되는군요.일시적 장애였나봅니다.지금은(19시 현재) 광주를 지나고 있으니 글은 자정 이후 올라가지 싶네요.
오늘 서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그동안 1시간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그렇게 오긴 했습니다.(지금 현재 종로는 비가 그쳤군요)온도도 내려갔으니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데 한랭지사양 양산형 폭죽에겐이 날씨도 습도가 높아 지옥이긴 매한가집니다.더 괴로운 건 다들 살만하다고 하니 홀로 겪는 지옥이죠.오늘 오전의 이 날씨를 오사카나 나라, 교토에선 10월 말에 맛볼 수 있습니다.제작년 일본 여행에서 그걸 뼈저리게 절감했는데오늘 소개할 도쇼다이지 가던 날과 오늘의 날씨가 비슷했습니다. 원래 퇴근할 때도 그렇지만 여행할 때도 루트가 계속 바뀝니다. 기분에 따라, 그날 몸 상태나 거리의 인구밀도에 따라.. 그저 장애물을 만나면 방향을 트는 물이라고나 할까.이 날도 오전에 평성경 유적을 돌도 점심 때 ..
위의 목판은 가가군(이시카와현 가호쿠군 스바타쵸)에서 관할 마을에 내려보낸 명령서입니다.현재 이시카와현은 옛 가가국과 노토국이 합쳐졌는데(레이디 가가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이 목판은 가가국지역에서 발견된 겁니다. 율령제하면 잘짜여진 국가의 통치체제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중앙정치제도라던가 지방행정구역, 군사제도와 같은 행정기구만을 떠올리기 쉽죠.그러나 실상은 황제의 지배를 백성 하나하나 빠짐없이 전달하는 것입니다.관리들만 잔뜩 모아둔다 한들 그것만으로야 비누하렘에 불과하지요.(이조판서, 등짝을 보여주시오. 즈~은하, 승은~이 망극하여이다~~~~.. -_-;;;) 통일신라를 다루는 수업을 할 때마다지금의 북한을 생각하라고 합니다.5호담당제니, 거주와 이동의 제한, 직업이나 생산, 생활전반에 대한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