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1. 들어가며 삼국사기는 한국고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문헌기록입니다. 동시대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가지고 있지요. 김부식은 자료수집의 과정을 거쳐 전시대에 기록된 문헌자료를 수집하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또 내부의 기록 속에 인용한 자료의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인용서적은 중국의 사서오경부터 일본의 기록까지, 시문집으로부터 불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을 보여줍니다. 이 글은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어떤 방법으로 쓰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입장에서 국내자료, 특히 고려시대의 저술과 문집을 어떻게 이용하였는가를 찾아내보려고 합니다. 과연 김부식은 어떤 자료를 보았는가를 넘어서, 동시대인들이 편찬했을 다른 자료들을 어떻게 취급했는가에 관심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지요. 2. 삼국사기..
지난 금요일 횡성에 있는 독립운동유적을 조사하던 차에 어여쁜 신라 석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 탑이 서있던 곳은 갑천면 중금리였으나 횡성댐이 건설됨에 따라 중금리가 수몰지역에 포함되어서 현재의 위치, 망향의 동산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수몰지역 출신자릉 위해 횡성호반에 망향의 동산이 세워지고 기념관을 두게 됩니다) 현재 이 탑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1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강원도내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쌍탑형식입니다. 1974년에 해체와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는데 당시의 기술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는지 금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주 매끈하고 흰 부분은 새로운 부재로 채워넣은 부분입니다. 그냥 보시면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으나 일제시대에 이 탑을 반출하려다 실패한 이후 탑이 많이 훼손되었기에 ..
추석연휴 잘 보내셨나요? 요즘 정신없이 돌아다니다보니 집에 들어오면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추석연휴에는 종일 드러누워 있었으니 그것을 한탄하는 아내가 없음이 다행이고, 그를 달래기 위해 백결선생처럼 거문고를 뜯어야 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온달과 같이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공주에겐 한가할 여유조차 없군요. - 원문 乃賣金釧 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資用完具 初買馬 公主語溫達曰 “愼勿買市人馬 須擇國馬病瘦而見放者 而後換之” 溫達如其言 公主養飼甚勤 馬日肥且壯 - 번역문 이에 금팔찌를 팔아 땅과 집, 노비, 소와 말, 가재도구를 사니 살림살이가 장만되었다. 처음에 말을 사려할 때, 공주가 온달에게 말하기를, "시정상인의 말은 절대 사지 마세요. 반드시 국마로 병들고 파리해서 내..
아주 오래간만에 이 블로그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고 여행후기를 더는 안쓰겠다는 것은 아니지요. 어찌되었든 이야기는 다시 이어갑니다. - 원문 公主獨歸 宿柴門下 明朝更入 與母子備言之 溫達依違未決 其母曰 “吾息至陋 不足爲貴人匹 吾家至窶 固不宜貴人居” 公主對曰 “古人言 ‘一斗粟猶可舂 一尺布猶可縫’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 可共乎” - 번역문 공주는 홀로 돌아와 싸리문 아래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온달)모자와 더불어 자세히 말하였는데, 온달은 마음이 정해지지 않라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온달의 모친이 말하기를, "우리 자식은 지극히 천하니 귀인의 배필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우리 집은 매우 가난하니 그런 고로 귀인이 머물만한 곳이 못됩니다"라 하였다. (그러자..
8월 25일은 볼 것이 많았습니다. 24일글을 3편으로 나누었는데 25일은 5편 이상은 끌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우리 지온은 10년은 싸울 수 있다던 님께 묵념.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망했자나요!) 오늘은 볼 것 투성이인 집안의 유적들을 돌아보기 전에 예열한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짧게 나가겠습니다. 밤에 집안으로 들어와 도시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기회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발마사지도 받으러 가셨지만 워낙 오녀산성에서 흘린 땀이 많아 빨리 씻고 싶은 맘 밖에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변방 중의 변방인지라 몸조심도 해야한다는 말이 심야산보를 막았습니다. 뭐, 한밤중에도 길 전체가 공사중인데다 밤에 문을 여는 곳도 없으니 마땅히 할 일도 없지요. 왜들 그렇게 한국의 밤문화, 밤문화..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