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112)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한국사학계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식민사관에 대한 문제이다. 그냥 강단사학계, 이 띱때들은 전부 일제 식민사관의 계승자로 여전히 한국사의 영광을 감추고 비하하는데 혈안이 되었다는 말. 그것만으로도 항문까지 막히고 목까지 차올라 얼른 병원가서 관장액 시술받아야할 판인데 (아니면 배에 구멍이 뚫린 상태에서 '고마해라 너무 마이 무따 아이가..'란 말이 나올 지경) 때로는 뉴라이트에 반대하는 곳에서도 한국의 국사학계를 장악한(!) 서울대 국사학과 놈들이 뉴라이트를 주도한다는 메뉴가 추가되었다. 일단은 관악산 아래 모 학교가 한국의 국사학계를 장악했다는 정의에 서울 신촌의 몇몇 학교와 소백산맥 이남의 몇몇 학교 사람들이 책상을 부숴버릴 것이며, 종종 반대파 논문보다 일본의 옛날 논문 읽는 걸 좋아하는 이도 있지..
요즘 1주에 두번 KTX를 탑니다.가뜩이나 더 병약해진 몸이라 다녀온 다음 날은 종일 시체놀이라능(아님 삼국지나 은영전 게임을 하거나 얀데.레에서 그림 저장하는 정도?)화요일에도 김양에 대한 자료를 싸들고 오가며 검토를 하다가돌아오는 기차에서는예전에 그렸던 신라 하대의 왕계보가 잘못된 것 같아서다시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원래 만든 것은 이것이었는데아무래도 균정과 헌정의 순서가 틀린 것 같아낑낑대며 한글에서 표그리기를 통해 저 족보를 다시 만들었지요.(뭐, 굇수중에 한글 표로 다보탑도 그리던 이도 있었습니다..)아무래도 헌정이 형이고 균정이 동생인 것 같아서요.돌아오는 내내 더운 객차 안에서 다시 만든 게 이거.. 이제야 과거의 과오를 바로 잡았다고 의기양양했는데................. 앞의 것..
원래 인간은 모순덩어리다.이것은 무슨 철학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그냥 역사에서도 흔히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흔하디 흔한 무협물, 또는 소년물에서악당은 주인공의 가족만을 몰살시키면서 주인공만은 살려두는 우를 범한다.거기에 한술 더 떠서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물론 거기서 죽여버리면 그것은 주인공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거고(이른바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또는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가 되어버리니 우짤 수 없는 거고.악당의 길에서라면 그것은 있어서도 안된다.악당의 시각에서 그걸 해석하자면 변덕, 또는 모순. 그런데 역사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정말 창작물처럼 살려줬다가 극적인 복수를 당하기도 하고 또 어설픈 대처가 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뭐에 홀린듯 평상시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하기도 하고..
노트북 내부를 뒤적이다 보면 뭔가가 자꾸 기어나오죠.오늘도 사진 폴더를 뒤지다보니 마주치는 것이..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과거의 2G폰으로 찍은 백제의 사람 얼굴 소조입니다.뭔가 우수에 젖은 표정이 일품이지요.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나중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다양한 불교조각상을 보았고,결정적으로 춘천박물관의 숨겨진 걸작인 나한상을 보노라니어쩌면 이것도 나한상의 한 부분이 나니겠는가 싶어요.불교미술에서 다양한 군상을 살피는데 탱화를 떠올리는 분이 많지만진짜 살아있는 표정은 나한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조만간 춘천박물관에 갈 예정인데 가서 나한상이나 찍어와야겠군요.
경주에서 노서동인가 노동동인가 고분들이 모여있는 동네가 있습니다.황남대총이나 천마총이 있는 곳은 공원화가 일찍부터 이루어져나름 고분 내부의 전시도 하는데그 길 건너편에는 그냥 개방된 곳이라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은 그냥 지나치는 곳이 있지요.거기엔 초창기 고대사 서술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뭐, 이것밖에 없었거든요. 그 시대에는..)금관총이나 서봉총 등의 고분들이 있습니다.해방 이후에 건드린 천마총이나 황남대총의 경우발굴조사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지만일제시대에 발견된 이 고분들은 삭토가 되었지요.일제의 문화재 파괴라기 보다는발굴을 했는데 그 이후를 어떻게 복구해야할까에 대해계산이 전혀 서지 않던 초창기 고고학 자체의 한계였습니다. 1960~7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고대사, 고고학 개설에..
아무래도 전쟁을 읽다보면 자꾸 계량화된 것만 보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는 적을 몇 명 죽였는데 아군은 몇 명 죽었는가, 무기와 보급은 어땠는가, 이 전투가 전쟁의 향방을 얼마나 좌우하는가... 언젠가 손대볼까 했던 역사상 전투에 대한 원서를 볼 때마다 이거 맘 아플 일 없고 참 편하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어느 땐가 전쟁을 하지 않거나 져야하는 것과 이겨야 하는 것으로 구분하는 버릇도 생겨났습니다. (져야하는 전쟁은 이기면 더 많은 전쟁으로 끌려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학교의 건달들 만화에서 하나 깨부시면 다음 편에서 또 다른 놈이 도전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그것은 멀리서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맘 편한 이야깁니다. 정작 그 전쟁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필사적입니다. 영화에서 볼 때와 달..
한때 짐순이는 고대사를 버리고 미술사의 어린 꽃이 되겠어..라고 날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뭐, 외우는 걸 전혀 하지 못하는 내장 컴퓨터의 한계를 넘기 위해불상이나 탑, 목조건축의 가구 부속품의 이름을 외운 적도 있습니다.(문제는 다 잊어버린 게 문제. 양산형에게도 좋은 컴퓨터를!!)그때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미술실은 보물창고였습니다.어차피 후삼국 이후는 관심에도 없으니까삼국시대 후기와 통일신라 불상에 푹 빠져버렸지요.(물론 소녀는 궁극적으로 석탑모에였지만요..)그 때 그만 사랑에 빠져 비는 시간이면 찾아가게 했던 불상이 있습니다. 짐순이는 남몰래 미련밤퉁이란 별명을 지어주고는마치 교생선생님에 반해버린 중딩마냥부끄러운 소녀심을 전시실 충만하게 만들었지요.미려함을 자랑하는 감산사 불상도 있고삼국시대 불상하면 ..
김해에 일이 생겨 돌아다니던 시간에 한가하면 박물관과 홈플러스와 서점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보게 된 김해박물관은 짐순이에게 영향을 끼친 박물관입니다. 전시를, 아니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영감을 주었거든요. 나중에 듣자하니 국립김해박물관은 연구 중심으로 특화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유물이나 문화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전시에 대한 연구도 한다는 겁니다. 오늘 찾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앙박물관을 처음 지을 적에 춘천박물관이 시설로 베타테스터였다면 김해박물관은 전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실험해보는 곳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생각해보면요, 그동안 박물관은 밋밋하게 유물을 전시하고는 박물관 학예사와 동료 연구자들이나 이해할만한 설명을 붙였습니다. 그냥 사람들은 지나칠 수 밖에 없었지요. ..
어제 고대사학회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마침 춘천에서 열린 것이라 더더욱 가봐야했죠.고고학쪽이 아니면 춘천에서 고대사가지고 행사 치룰 일이 없는지라..(강원도는 고대사 연구인력이 매우 적습니다)가서 발표자 분의 박사논문 하나 얻어오고다른 한 분은 왜 안주냐고 졸랐더니(뭐 아는 분입니다) 우편으로 보냈는데 안받았남? 하시더군요.(그건 체크 못했다!!!)이래저래 재미도 있었고 이래저래 수확이 많았습니다.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나에 대해 생각할 것이 많았습니다. 잠시 하나 재미난 일이 벌어졌습니다.원래 이런 행사에 전업적인 연구자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약간 재야스런 분도 종종 오시고(나름, 단골도 있어요)최근에 들어서는 일반인의 참여도 늘어납니다.사람이 별로 없겠거니 하며 늑장부리다가보니 발표요지문도 못받은 적도 ..
일단 먼저 전제해두어야 할 것은고대 동양국가에서의 왕은 세계의 중심축이란 겁니다.아니 애시당초 인류사회에서 최고 지배자는 신성성에 기반한 일종의 터부같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이를테면 하와이의 추장은 언제나 가마에 타고 이동하고아무하고나 신체접촉을 하지 않죠.만약 그가 어디에 발을 디딘 순간 그곳은 왕의 소유가 됩니다.우연히 발견한 꼬마가 귀엽다고 쓰다듬은 순간그 아이는 왕의 소유물이 됩니다.중세 서유럽의 왕들도 종기를 치유하는 권능의 힘을 가졌다고 믿었습니다.그걸 왕이라 부르던 황제라고 부르던 간에왕이 단순한 정치적 지배자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초창기의 왕은 정치적 권한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애니로도 만들어졌고,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을 보유한오노 후유미의 소설 십이국기에서 이런..
짐순이가 고고학이라면 겁부터 내는 이유 중 80%는 다 토기 때문일겁니다.무기류나 공구류는 머리 속에 잘 입력이 되는데이상하게 토기는 아무리 쑤셔넣으려고 해도 넣어지지 않습니다.(짐순이 : 왜 토기는 입력이 안되는거야?템 레이 & 아스토나지 : 넌 병기니까! 그것만 알아도 된다구!)뭐 이름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농담삼아 이 토기 이름 영어로 말해봐..란 농담으로 전해지는이중구연이나 구순각목돌대문토기.. 이름이야 복잡하지만이 이름에 그 토기만의 구조적 특징이 다 언급되고 있거든요.이중구연은 아가리(토기의 열린 부분)가 2중으로 만들어졌고,구순각목은 입술에 각목으로 찍은 듯한 문양,돌대문은 흙을 덧붙여 튀어나온 ... 악! 머리가 아파!!!!!이런 이름은 그냥 듣기에 복잡하지만어느 정도 특성을 읽히면..
주변에 고고학 하는 분들이 좀 있고, 짐순이도 고구려에 관심이 많다보니이래저래 자료를 찾다보니 북한 물건을 건드리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공지 : 1. 이 글은 부카니스탄을 찬양고무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차라리 그 시간에 "밤에도 일하는 병동"을 찬양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나의 렌이, 나의 렌이...!!) 2. 사상이나 정치적 문제를 다룬 북한 문헌은 여전히 취급에 제약이 있지만인문학같은 현실 정치에 '덜 위험한' 책은 유통될 정도로대한민국 사회도 나름 어른스러워졌으니공연한 빨간 알레르기 발동하진 마세요. 그러다보니 재미난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 중에 몇 가지만 이야기하죠. 과거에는 고구려나 발해, 또는 고조선지역 고고학을 공부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부카니스탄과 듕궉 모두 적대..
지난 여름부터 하고 싶던 일을 이제야 하고 있습니다. 자치통감을 다 읽어보는 짓인데요. 다행히 전체 번역이 되어있기에 중화서국 표점본 펴놓고 피를 토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걸 PDF로 샀는데 못찾아 다운 받은 게 있죠. 9천쪽짜리;; 전부 한문. 켁!) 그전에야 자치통감을 사료집으로만 대하고 필요한 부분만 읽었는데 이번엔 하나의 역사서로 대하고 쭉 읽기로 했습니다. 1주에 (번역서 기준) 1권씩 읽기로 정하고 오늘까지 1권이 끝나야 하는데 언제나 그렇듯 이제 반 읽고 있네요. (아마 원문으로는 두 달 걸리겠지..) 아주 어렸을 때 논어를 읽다가 흥미가 돋아 아니 이쪽 역사책을 읽다 논어와 춘추를 읽었던가.. 관심 있게 공부하던 시대인데 춘추전국이야기가 출간되면서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긴 했는데 막상..
그동안 책 이야기를 온과 오프에서 할 때마다 머리 속에 기준점은 초판/1쇄당 500부였습니다.네, 학술서적을 찍어낼 때 출판사가 생각하는 인쇄부수입니다.오래전에 미술사전문출판사인 예경에서도 500부 찍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가끔 이야기하는 단골서점 사장님과 대화할 때도가뜩이나 안좋았던 출판시장이 더욱 나빠짐을 봅니다.원래 역대 아르바이트/직원들 얼굴을 다 아는 서점인데몇 년째 사장님 부부가 직접 다 돌리는 걸 아니까요.원래 잡지 하나 정도 더 얹어주시던 분들이요즘은 그게 없는 게 이해는 됩니다.(그분들이 페도/로리라서 12살을 넘어서니까 싫증난 건 절대 아닐겁니다!) 오늘 고대사학회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원래 책은 나오면서 사오는데이상하게 들어가며 책을 사고 싶더군요.그래서 단골 사장님 부스에 가서 책을..
짐순이와 사극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주위에 없습니다.어지간한 사극을 보면 에미넴과 할미넴 저리가라의랩배틀이 사극을 보는 중에 튀어나오기 때문이죠.스스로도 사극을 보는 것이 얼마나 정신에 해로운지 알기에 안봅니다. 특히나 갑옷이나 무기, 건축양식 이런 것만 봐도아주 머리가 아파집니다.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뭐 제대로 아는 것은 없다고 스스로도 생각하지만그래도 거슬리는 것이 하나 둘 이상은 나옵니다.고대사를 다룬 사극이 많지 않고,그나마 어이 상실한 쓰레기들이 대부분이라 아예 시청을 거부한 덕에아직 짐순이는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사람들이 그렇게 지적하는 칼 차는 거오래간만에 본 정도전에선 제대로 반영되더군요.칼 차는 위치에 따라 발검 자체도 달라집니다.고대 그리스에선 오른손잡이가 왼 편에 ..
얼마 전에 다녀온 것 같은데 어느새 한 달이 흘렀습니다. 동서울에서 울진으로 가는 버스를 탈 때마다 여길 지나곤 했었는데 다른 일정이 겹치니 사사로이 들러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꼬장고장한 10대의 어설픈 고집 때문에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버스 외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이곳을 지나곤 했기에 더 가보고 싶었거든요. 한 달 전 서울 올라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 들러볼 수 있었습니다. 울진에서 가장 활발한 항구를 꼽자면 북쪽의 죽변항과 함께 남쪽의 후포항을 꼽을 수 있지요. 그 죽변항을 가기 전 국도를 타기 위해 한 번 꺾어야 하는데 바로 그 곳에 봉평비가 서있던 자리에 전시관을 세워놓았습니다. 거기로 들어가기 전 주변의 바다를 찍어봤는데 연방의 양산기에 실린 광학장치가 좋을 리 없잖아요? 걍 이거..
울진을 오가며 꼭 하고 픈 것이 두 개 있었습니다.하나는 울진봉평신라비 전시관에 가보는 것이고,(요즘 이름이 울진 봉평리신라비로 바뀌었지만 이게 입에 배었어여)또하나는 늘 들리던 휴게소의 닭강정을 먹어보는 것. 오늘 전시관에 다녀오는 것으로 일단 미션 하나는 달성했습니다.거기 학예사 분과도 인사를 했구요.겨울바다도 사진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오늘 일찍 돌아왔으므로(그래봐야 5시 넘어 서울 도착)며칠만에 여기 다녀온 글을 쓸 수도 있었지만갑자기 기분 나빠진 일이 있어서 오늘은 그냥 애니나 보다 잘랍니다.(숙녀소리 듣고 싶어 암만 많이 성질 죽였어도 그건 휴화산이지 사화산이 될 수는 없어여) 또 하나의 숙원 사업은 그저 오기로 점철된 것인데평창휴게소에서 파는 닭강정을 먹어보고야 말겠다는 말도 안되는 다짐.그..
지금 울진입니다.와이브로도 안터지고 테더링할 맛폰도 없어서 보통 낮에는 접속을 못하는데지금은 약속이 있어서 군창 앞 커피점에서 놀고 있습니다.오전에 두어분 만날 일이 있어서 돌아다녔는데다시 한 번 뒤통수가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그냥 문서로만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사람들의 한계랄까요..그런 이야깁니다. 원래 울진은 제2공화국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습니다.1963년에 울진이 동위도대 영주와 봉화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경상북도로 편입되었죠.덩달아 울진 소속이었다가 독립한 울릉도(+독도)도 경상도 소속이 되었죠.그러나 문화적으로도 영주와 봉화와는 완전하 다르고또 그 아래 지역과도 동질성은 그리 크지 않아요.오히려 삼척과 더 가까웠지요.그리고 일제시대 가장 좌익활동이 많았던현재 동해시(원래 삼척시에서 분리 독립..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있던 짐순이의 가방을 누가 두드립니다.뭔가 싶어 돌아봤더니(유미의 부름에 살포시 돌아보는 로자 키넨시스 앙 부통같은 그림은 안나와요)홍보전단을 든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습니다.뭔가 봤더니 환단고기 콘서트 안내장이었어요.그걸 받았겠습니까? 그냥 돌아섰더니왜 안받느냐, 네 뇬이 역사를 아느냐,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이가 극히 적다며 소리를 높이더군요.게 맛은 안다고 할까하다가 그냥 무시했습니다.저 만치 가더니 또 짐순이를 향해 고래고래 판소리 한마당.순간 뚜껑이 살짝 흔들려 간만에 환빠랑 현피 함뜰까하다가 나두 낼 모래면 스물인데..하고 입을 다물었지요. 집 앞 현수막(서울만 이런 게 없죠)에 걸린 걸 보고 알기는 했습니다.이제 우리 동네도 저 짓을 하는구나.. 그냥 그런 생..
예전에 비해선 글이 매우 적게 나오고 있습니다.뭐 더위에 맛이 간 것도 있지만 하는 일도 많아졌고,또 돌아다니는 일도 많아서 그래요.그리고 짐순이 특유의 머리 속 재조정 기간에 들어갔습니다.요즘 새로운 걸 공부하고 있거든요.바로 교역에 대한 것이요.정창원전을 보며 이쪽에 관심이 생기긴 했는데그 내용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마침 올 여름의 고대사학회는 약간 자극이 되었습니다.산 지 좀 되었는데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 내팽개쳐두고 있던김창석 선생님의 "삼국과 통일신라의 유통체계연구"와 그 분이 번역하신 이성시 선생님의 "동아시아의 왕권과 교역"을 동시에 읽었어요.처음에 그 책들을 손에 넣었을 때만 해도이성시 선생님 책은 읽었는데 뭔소린지 하나도 이해를 못했었고김창석 선생님의 책은 아예 펴볼 엄두도 안났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