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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910년을 고대로 보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많이 갈리는 듯 합니다. 아예 7세기에 중세가 시작된다고 보는 학자도 있고, 또 936년의 후삼국 통일을 염두에 두더라도 후삼국 시대는 은근히 고려시대사로 넘기는 느낌을 가지지요. 언젠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교통정리가 될 겁니다. 짐순이는 적어도 신라가 망하는 그 순간까지는 고대로 보는 입장이라 후삼국도 고대사에 넣고 있죠. 하여간 910년의 한반도와 만주 일원에는 4개의 국가가 병존하고 있었습니다. 가와 라는 그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발해와 신라입니다. 나는 궁예의 후고구려, 다는 견훤의 후백제지요. 발해는 거란에 의해 멸당당했으니 ㄱ은 통과궁예는 신라의 왕족이라 하죠. 그러니 ㄴ은 맞고견훤이 고구려 장수출신이려면 대체 몇 살? ㄷ은 통과.발해 건국 초에 신..
문제 자체는 매우 평이합니다. 삼국시대에 들어온 외래 사상이라고 해야 유교, 불교, 도교거든요. 그런데 이 중에서 전파 경로가 분명한 것은 불교뿐입니다. 유교는 중국의 한자문화와 함께 들어온 것 같은데 구체적인 시점은 좀 애매합니다. 다만 중국과 직접 맞장을 떠야했던 고구려나 낙랑과 대방군과 교류가 일찍부터 있었던 백제는 좀 빠른 시기인 것 같습니다. 신라는 적어도 내물왕 언저리부터 슬슬 맛을 본 것 같습니다. 삼국의 금석문을 보면 각국의 유교문화 수입의 시점이나 깊이같은 것이 차이납니다. 도교는? 고구려의 초기 벽화고분부터 도교의 냄새가 좀 나긴하고, 백제도 나중에 근구수왕이 되는 백제왕자가 고국원왕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추격하려고 하는데 장군 하나가 도덕경을 인용하며 추격을 말립니다. 다만 원시적인 도..
이거 캡쳐하면서 너무 쉽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장군총입니다.(현재 5학년 2학기 사회교과서가 선사부터 조선 후기인데 이번 교과서 본문에는 안나오네요. 쩝..) 1. 중국 남조의 영향.. 이건 무령왕릉 이야기죠.2. 도굴. 멍청이도 할 수 있는 튜토리얼 도굴코스죠. 고구려의 고분은. 다만 부장품도 적다는 게 개그.3. 12지신. 이거 보려면 경주의 통일기 무덤들.. 김유신묘라던가. 김유신묘라던가.. 가봐야져.4. 짐순이도 전에는 서울 석촌동과 방이동의 고분이 고구려 고분과 유사하다고 적었는데 겉 모양만 비슷합니다.5. 벽화.. 후대의 봉토석실분에나 그려졌죠. 좀 찜찜해도 정답은 4번. 이건 전에 직접 찍은 장군총입니다. 크고 아름.. 엥?
이러다 문제풀이하는 속도보다, 국편에서 문제 내는 속도가 더 빠를 것 같네요.(뭐, 매번 이런 말을 하니 염치두 없지!!) 요즘 맨날 동이전 관련 기록만 보는데(어라? 이 女ㄴ이 침두 안바르고 거짓부렁을! 아냐아냐 짐순이 4월 신작 고작 3편 봤심) 순간 답이 뭔가를 고민했네요. 뭐 짐순이가 그렇죠. 지문의 첫번째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의 내용입니다. 고구려 초기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죠. 고구려가 쌈 좀 하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지요. 지금은 국내성 부근이 만주의 곡창이지만 그 시절에는 먹을 게 부족하니 쌈박질로 삥 좀 뜯어야죠. 처음에는 지들끼리 삥 뜯다가 좀 커지니 이젠 중국을 터는 상황이죠. 그래서 기사 논조가 마치 민주당 보는 조중동문 논조입니다. 지문의 두번째는 삼국사기 열전5 온달전..
2016년 4월 27일 12:30[춘천=쟈브로통신] 안문호 기자25일 강원도 춘천시 중도 레고랜드 건설현장에서 공사도중 새로운 선사문화의 증거가 출토되어 학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집자리에서 신석기 말기와 청동기 초기에 걸쳐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 짐순문화의 토기 2점이 출토되었다. 1점은 짐순문화기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토기와 뚜껑이며 하나는 그것보다 뒷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짐순문화 연구의 권위자인 마 쿠베 박사에 따르면 초기의 토기는 작은 것으로 주로 식기로 쓰였으며 하나는 대접으로 쓰인 것 같으며, 이 문화권의 특징은 차츰 큰 형태의 토기를 선호하는 것으로 학계에선 이를 큰 것이 아름답다고 믿는 문화적 특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토기제작의 특성으로는 ..
오늘까지 해야하는 일 중에 안한 게 생각나서 다시 켜고 마의태자에 대한 자료를 찾는데 논문은 없고(중대도 그렇지만 신라 하대는 정말 연구자가 희귀하다. 더욱이 후삼국과 걸쳐버리면..) 이상한 글만 나오는데 .. 이게 또 지자체의 지역역사 현장사업과 엮이니 참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이야기가 역사로 포장된다. 중국 금나라의 시조된 마의태자의 후손 어느 양반이 금나라 왕족이 신라왕족이란 속설에서 더 나아가 마의태자 후손이라 글을 쓴 거 보니 잠이 확 달아난다. 물론 애신각라 드립도 멀게는 조선후기, 가까이는 일제시대까지 올라가는 드립계의 시조새다.(규원사화의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래도 환단고기보단 올라가겠지만) 이건 역사가 아니라 창작이다. 아니 차라리 일제시대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마의..
뭐 사실은 짐순이 자신을 위한 자료 정리입니다만 기왕 하는 김에 포스팅도 하고 혹시 필요한 분들께 도움이 된다면 또 좋은 거지요. 1.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 : 농기구조선이나 근현대 농업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면 자료는 많습니다. 농기구에 대한 책도 많고요.(대개는 조선 후기와 근현대 농기구들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공부하고 싶다면 서대문 농협중앙회 옆의 농업박물관에 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민속박물관에도 좀 있지만 아무래도 전문박물관이 낫지요. 짐순이도 농기구에 대해 공부하러 이 박물관에 가서 구경온 유치원생들 옆에 쭈구리고 앉아 열심히 필기를 했지요.(언냐 뭐해? 그림공부해... -_-;;)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대원사에서 나온 빛깔있는 책 시리즈의 농기구를 사서 보면 낫죠. 아니 농업인데 왜 농기구..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고대사를 보는 두가지 눈, 역사학계와 종교집단의 차이에 대해선 다시 말하는 것은 내키지 않습니다. 관심이 좀 멀어진 면도 있고, 가끔 적기도 했지만 짐순이의 10대 초반은 환빠로써 살아오기도 해서 말하기가 뭣한 것도 있죠. 암만 자기비판이라도 자꾸 하다보면 스스로가 너무 가여워지기도 하고.(맨날 스스로를 욕하다보니 정말 그렇게 될 것 같구.. 웅.. 아아.. 기죽는단 말여요. 히잉..) 가장 중요한 것은 순발력도 떨어지는데다 싸우는 걸 매우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굳이 비유하자면 옛날 서양영화에 종종 나오던 엽서나 편지로 체스를 두는 스탈이죠. 무슨 장기 한 판을 몇년을 두는.. . "정치외교 이득 따라 움직이는게 진짜 학문 맞나" 저 분들 중 두 분은 인사를 나누는 사이고(어쩌..
아.. 정말 답을 모르겠어여.. 그러고 보니 신라 하대 탑 얘기를 한 적이 있었군요. 답은 1번. 신라 하대 지문은 이거 밖에 없네요. 4번은 통일 직후 신문왕 즉위 초, 5번도 그 언저리. 2,3번도 통일 직후 중대 이야기. 순간 문제 올리려고 캡쳐하다 놀랬던 소녀의 가련함.
앞선 글에서 좀 길게 썼는데 이번엔 짧습니다.(저번 글보다는요!) 앞선 글의 마지막에서 고구려 관등에 대한 각기 상이한 기록 중에 어던 것을 취해야하는가 고민한다는 부분까지는 썼군요.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저번과 약간 다른 표 하나를 올려봅니다. 위서주서수서북사신당서한원삼국사기1알사대대로太大兄대대로대대로대대로대대로?2태사태대형대형태대형울절태대형태대형?3대형대형소형대형태대사자울절주부4소형소형대로소형조의두대형태부사자대상5 의후사의후사의후사대사자조의두대형위두대형6오졸오졸오졸대형대사자종대상7태대사자태대사자태대사자상위사자대형대형?8대사자대사자대사자제형발위사자소상9소사자소사자소사자소사자상위사자적상10욕사욕사욕사과절소형소형11예속예속예속선인제형제형12선인선인선인고추대가과절선인13욕살 부절조의14 선인 좀 더..
2, 3번은 어디 갔냐고요? 그건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다루고 있어섭니다. 그래서 간만에 한다고 순서도 까먹은 건 아니란 말쌈. 저 지도 안의 나라는 가야연방입니다.(지구연방과는 다르다! 지구연방과는!!) 솔직히 저기가 연방체를 이루고 있었느냐에 대해선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멀리서 봐도 좀 뭉쳐있긴합니다. 그러나 저것을 현재 연방국가들(대표적으로 미국)처럼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지고 묶여있었느냐에 대해서 짐순이는 회의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 같달까. 실제로 영역국가로 성장한 백제와 신라가 숨통을 좁혀오자 각국들은 서로의 입장(까놓고 말해 누구 주먹이 가깝냐)을 달리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야를 중시하는 것보다 부여를 그 자리에 넣는 것이 낫다 싶을 정도죠. 2번은 신라, 3번은 신라 ..
관등이라는 건 쉽게 말해 9급 공무원이냐 장차관급이냐, 총리급이냐 하는 식으로 해당 공무원의 지위를 나타냅니다. 지금도 공무원의 등급은 그 권한의 차이를 보여주죠.(물론 봉급도 차이납니다) 지금도 공무원의 위계는 중요하지만 고대에는 더욱 중요합니다. 바로 그 시대가 신분제 사회기 때문입니다. 돌쇠라는 사람을 가정해보죠. 거기에 그가 6급 공무원이라고 해둡시다. 그가 평민이나 천민같으면 절대 오를 수 없는 위치입니다. 단순히 공무원 위계로 치면 1~5급보단 낮고 7~9급보단 높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하나가 더 붙죠. 만약 그가 신라 식으로 진골이라면 그냥 처음 임용된 직후에 받는 급수라고 해두죠. 아마 그는 꽤 젊은 나이일 겁니다. 만약 그가 6두품 정도의 신분이라면 평생 경력의 중간입니다. 앞으로 ..
얼마전에도 부여사에 관해 나온 책을 소개했지만(요기!) 수험업계를 제외하고 나면 부여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습니다. 짐순이 스스로도 부여에 큰 관심이 없었죠. 마침 써야 할 것이 있어 부여를 공부하려고 이것저것 펴보는데 1시간 전까지 날씨가 좋지 않을 때 부여의 왕을 죽이는 내용의 기사는 후한대 학자 왕충의 "논형"에 실려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가지고 있는 "논형"(물론 소나무판 국역본이지요)을 뒤져봐도 부여의 건국신화만 실려있지요. 웅.. 혹시나 싶어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펴니.. . 이봐!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너무나도 기본적인 사료잖아!!!!!!!!!!!!!!!!!!!!!!!!!!!!!!!!!!!!!!!!!!!!!!! 그제도 모처에서 강원도 대표 멍청이가 되었는데 정말 무식한 女..
학문의 분야에 따라 전공자가 아니면 이해 못하는 게 있다. 고고학자가 암만 말해도 문헌사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많다. 지역에 따라 토층이 어떻게 다르고, 또 같은 시굴방법이라도 유구에 반영되는 게 다르다. 하다못해 강원도만 해도 영서와 영동이 다르고, 영서 안에서도 춘천과 영월이 다르다.(영월은 흙이 구석기 토양이다!!!) 이른바 경상도에서 발굴로 뼈가 굵은 사람이 강원도 오면 헤메는., 방금 이걸 써놓고도 사실 짐순이가 이해하는 건 영월의 토양 이야기 뿐이다. 직접 봤으니까. 가끔 고고학자들은 문헌사, 특히 고대사쪽이 고고학을 너무 모른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고고학 없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서 읽고 있던 책을 던진 적이 있다. 예전에 고성문암리에서 신석기 농경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흥분한 적이 있..
이 문제는 어렵네요. 농경과 관련있는 유물을 찾는 문제입니다. 정답은 2번 반달형 돌 칼입니다. 그러나 응시자를 첫 문제부터 보내버리는 것은 1번 빗살무늬토기의 존재입니다. 일단 고고학에서 토기는 농경의 근거입니다. 그 부분을 강하게 인지하는 응시자는 다음 문제를 풀 시간을 빼앗겨버릴 수 있습니다.(물론 초창기 시험은 요즘 것에 비해 난이도가 좀 센 편입니다) 반달형 돌칼도, 토기도 농경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물건이죠. 곡식같이 작은 식재료가 아니면 인간이 토기를 만들 일이 없는 것이며, 반달형 돌칼은 수확용 도구입니다. 이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은 도구가 사용된 시대입니다. 지문에서는 벼농사를 이야기하고 있지요. 신석기 단계에서의 농경은 주로 잡곡입니다. 한국사에서 벼농사는 신석기 말에도 그..
사실 오늘 같이 이렇게 지나가는 글로 사용할 글감은 아닙니다. 책으로 치면 장 하나를 사용해서 이야기할 주제지요. 그러나 이 주제로 글을 써야지 맘 먹은지 1년이 지나고, 갈 수록 관심이 멀어지는 와중에 언제 쓰나 싶어 개략만 끄적거려볼까합니다.(지금 머리 맡에는 화랑에 대한 책이.. 다시 삼국사기의 화랑이야기 준비중임돠) 고대로 올라갈 수록 인구도 적고, 반면에 권력이 신적 권위에 더 많이 기대던 때라 후대 도시보다는 인위적이고 도식적인 면이 많습니다. 화약병기 도래 이후 전쟁사의 흐름은 병사들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는 것처럼, 후대로 내려올수록 인간의 거주 분포는 입체적입니다. 그런데 고대로 올라갈수록 인구도 적고, 인간의 자연개척 기술이 자연의 자체 수복력을 넘지 못할 때는 소수의 인간들이 좁은 공간..
아주 오래간만에 문제를 올리네요. 사실 본격적으로 문제를 풀이할 정신은 아니지만 몸을 푼다는 의미로 시작해봅니다. 이 문제는 좀 간단히 넘어가봅니다. 사실 동북공정의 뿌리는 만주국 시절의 중국사학계의 대응으로 거슬러가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발해를 어떻게 볼 것인가로부터 시작합니다. 북한과 남한 학계가 이에 대해 발해는 고구려 후계국가라고 반박을 하니 '그래? 고구려도 우리꺼라고 하지 뭐'.. 이렇게 대응한 것이 동북공정입니다. 2~5번까지는 남북의 학자들이 꾸준히 제기하는 논리였습니다. 1번은 8세기 동아시아 국가들이 하던 일이라 이걸 가지고 중국꺼라고 주장하면 당나라 영토는 북해도 제외 일본열도도 아우르겠지요. 주작대로는 궁성의 남문(서울로 치면 광화문)으로부터 도성의 남문(서울로 치면 숭례문)으로 이어..
고조선의 멸망과정에 대한 가장 자세한 기록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조선열전입니다. 바로 사마천의 당대에 일어난 사건이기에 사료적 가치에 대해서는 달리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 조선열전을 이야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지요. 다만 조선열전이 가진 사료적 가치에만 주목하다보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과연 무제의 개인적인 욕심, 정복욕으로 이 전쟁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짐순이가 국가간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누누히 강조해온 것이 있죠. 전쟁의 원인은 매우 다면적이라 우리민족은 평화숭상, 저들의 야욕, 정신력으로 이겼다.. 이런 것을 강조할 수록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고요. 물론 무제 시대를 읽다보면 그 사람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더 ..
뭐, 짐순이는 취향이 특이해선지 최신 이론보다 할아버지들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편이긴 합니다. 종종 이 블로그에 오래된 책 올라오는 게 그거죠. 요즘에는 거론도 하지 않는 김기웅, 김정학같은 분들 책도 구비하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놓고 '한달 다되었으니 반납하세요'라는 문자를 받을 때까지 표지도 못 펴는 상황 아니면(정말 아무리 안봐도 속표지까진 봤는데!!!) 할아버지들 책 읽는 게 좋죠. ㅎㅇㅎㅇ.. 책장을 뒤적이다 보니 이 책도 나오네요. 이병도의 "한국고대사연구"입니다. 1992년 중판본이고요. 원래 책을 어지간하면 비닐로 싸는데, 몇몇 책은 그 안에 색지를 한 장 더 넣기도 했습니다. 룩콴텐의 "유목민족 제국사", 라츠네프스키의 "칭기스 한"부터 시작된 버릇인데 이기백의 "신라..
동해안을 올 때마다, 바다를 보게 되면 궁금한 게 있습니다. 강원도(경기, 충청 일부 포함)가 삭주(영서)와 명주(영동)로 불리던 시절에 사람들은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울진에서, 강릉에서 보이는 풍경은 삭주의 그것과는 너무 다릅니다. 산너머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지평선이라는 것을 모르고 삽니다.(물론 호남평야 일대를 제외하고 한반도에서 지평선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평선을 보노라면 언제나 새롭습니다. 수평선, 그리고 한 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보며 그 사람들은 무얼 보고 느꼈을까요. 물론 대다수의 명주사람들은 거 한가한 소리하네 했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소개했던 강릉 강문동 신라고성 옆 해변에서 적어봅니다. 어떤 설에 따르면 천 오백년 전 이사부가 울릉도에 침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