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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서울신문 - 온달장군과 아차산성 뭘 뒤지다보니 하나 걸리는 글이 있더군요.온달이 어디에서 죽었느냐에 대해서서울시 광진구와 충북 단양군의 의견이 매우 다릅니다.지자체에서 고구려 걸고 넘어지는 역사는 꽤 되었지요.언젠가 화제가 되었던 고구려유겐트 사건은 그런 분위기의 가장 극단적인 표출이었습니다.지자체 출범 이후 내고장 현창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다 보니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을 부각해서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각 지자체의 뻘짓이 텍사스 벌판의 버팔로가 몰려오듯.. 그랬습니다.그나마 요즘은 역사인물을 통한 관광상품 유행이 지났지요.뭐 그런 역사인물 현창사업에서 가장 성공한 것이 단양군입니다.단양에서 벌이는 온달문화축제는 자리를 잡은 극소수의 성공작입니다. (뭐 단양군의 사업은 그 역사적 여부를 떠나 순수 지방 축제..
원래는 설씨녀 포스팅을 들어가야 하는데또 순서가 밀릴 것 같군요.지난 4회에 걸쳐 집필자에게 욕을 퍼부어주었으니(사실은 10%만 한 거지만)이젠 따뜻한 모성애로 맞아 부푼 자리에 약도 발라줘야 할 차례로군요.뭐 우짜겠습니까.지가 무식해서 이런 걸 교과서라고 썼는데아아.. 그래도 수메르는 환국연방의 12번째 막내다..이런 얘기는 안했으니 그나마 봐줘야지.몰라서 저러는데 너무 갈구는 것보단 또 가르쳐야죠. 이번엔 무식한 선생님이 혹여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한국사 교과서를 다시 쓸 경우.. 아아, 그럴린 없겠지.혹여라도 학교에서 안잘리면 나중에라도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잘려도 학원같은 데서 수강생들에게 책 안잡히게이러저런 건 공부하라고 책과 논문 몇 편 권해주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뭐 꼭 단 한 분..
오늘도 노가다를 합니다.티스토리 에디터로 글을 직접 올리기도 하고,메모장이나 아래아 한글로 쓰고 옮기기도 하는데눼, 또 깨집니다.그래도 두어번 당하니 꾀가 솟아(나름 사피엔스 사피엔스한 모빌슈츠라능)오늘은 글 안날리고 올릴 수 있을 겁니다.정말 어제까진 화가 많이 났는데오늘이 되니 실실 웃기 시작했습니다.너무 과한 분노가 솟으니 이러다 몸상하겠다 싶어방어 프로그램이 작동하나봐여.덕분에 오늘은 주위 사람에게 몸이 싸늘해지면교과서 분석자료를 읽어보라고 권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아니면 같이 분노로 죽자????)좀 비아냥이 많습니다.사실 이것도 많이 억누르는 겁니다.정말 회의실 큰의자 던지고 책상을 발로 차 넘기던사춘기 시절 버릇 나올까봐 참는 것이고정말 이따위 쓴 인간이 대갈빡에 솜털나고 처음 듣는 욕을 ..
오늘 글도 자꾸 날아가는군요.걍 티스토리나 다음에서 짐순이를 감시하고 있다!!라는 망상을 하기엔19살도 나름 현실적이라그냥 제공된 한글화일의 코드문제겠거니하고 한번 함 해보자는 각오로 또 노가다를 합니다.미소녀의 열정을 이런데 소모케 하지 말라구!!!왕자 찾아다니기도 빡센데~!!!!!!!!!!!!!!!!!!!!!!!!!!!!!!!!!!!!!!!!!!!!!!!!!!!!!!!!!!!!!!!!!!!!!!!!!!!!!!!!!!!! 1 [GM] 이 부분을 읽으며 솔직히 짐순이가 고구려 초기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의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졸본이 너무 좁아 국내성으로 이전하고, 계속 이웃나라를 쳐서 평야지대를 노렸다는 기본 서술은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더욱이 졸본보다 국내성이 더 좁다는 말은 좀 머리가 아파..
앞 글에서 욕을 했었지만고대사부분은 의도적인 정치적 서술이라기 보다는정말 함량미달의 역사지식으로 쓴 게 대부분입니다.그래서 이 부분을 서술할 때는 마지막 결론 부분을 쓰기 전에는과한 욕은 없을 겁니다.다만 이 단원을 쓰신 모 교사분의 역사 공부에 대한 기본 소양만 언급하지요.(사실 이게 더 극한 디스!!)오늘은 삼국 이전 선사시대부터 고조선, 부여까지만 다루겠습니요.미리 말을 해야겠지만 이 시대에 대한 짐순이의 이해도는 접시에 담긴 물도다 얕음을 밝힙니다.분석자들의 언급은 손표시, 짐순이의 언급은 GM이란 말머리를 답니다. 12쪽, 14쪽 [구석기시대 유적 분포 지도] [신석기 유적 분포 지도]☞ 최근 교과서의 추세는 선사시대의 공간 범위를 만주 일대, 특히 요동 지역 유적을 포함시킴. 교학사는 누락. ..
사실 최근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뭔가 판단하기엔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지라이쪽의 이야기에 맞추어 몸과 정신이 움직이다 보면정 반대의 사실을 마주할 때도 종종 있지요.그리고 워낙 과거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니만큼첨단의 시사도 좀 과거의 이야기가 된 후 보자는 직업병일런지도 모릅니다.(마치 잡은 먹이 물에서 썩혀서 먹는 악어의 식성이랄까)교과서 문제가 대두할 때도 조금은 멀리 있었습니다.교과서를 본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디스도 잘하는 짐순이지만의외로 교과서에는 약합니다.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고 교과서가 가지는 특성도 있어서매의 눈으론 보지 않았습니다만(어느 정도는 신뢰한다는 겁니다)울진에 내려가 있던 요 며칠 동안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
예전에 비해선 글이 매우 적게 나오고 있습니다.뭐 더위에 맛이 간 것도 있지만 하는 일도 많아졌고,또 돌아다니는 일도 많아서 그래요.그리고 짐순이 특유의 머리 속 재조정 기간에 들어갔습니다.요즘 새로운 걸 공부하고 있거든요.바로 교역에 대한 것이요.정창원전을 보며 이쪽에 관심이 생기긴 했는데그 내용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마침 올 여름의 고대사학회는 약간 자극이 되었습니다.산 지 좀 되었는데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 내팽개쳐두고 있던김창석 선생님의 "삼국과 통일신라의 유통체계연구"와 그 분이 번역하신 이성시 선생님의 "동아시아의 왕권과 교역"을 동시에 읽었어요.처음에 그 책들을 손에 넣었을 때만 해도이성시 선생님 책은 읽었는데 뭔소린지 하나도 이해를 못했었고김창석 선생님의 책은 아예 펴볼 엄두도 안났었지요..
덜그럭덜그럭, 목란이 방에서 베를 짠다.베틀소리 멈추고, 긴 한숨소리 들린다.무슨 걱정인가 물으니, 무슨 생각인가 물으니"다른 생각 아니요, 다른 생각 아니요.어젯밤 군첩이 내렸는데, 가한께서 군사를 부른다오.그 많은 군첩 속에, 아버지도 끼어 있소.우리집엔 장남 없고, 목란은 오라비 없으니내가 안장과 말을 사, 아버지 대신 싸움터에 나가겠소." 동쪽 장에서 말을 사고, 서쪽 장에서 안장 맞추고남쪽 장에서 고삐사고, 북쪽 장에서 채찍을 사아침에 부모에게 하직하고, 저녁에 황하에 머무른다.부모 애타는 소리 못 듣고, 다만 황하 물소리만 청청아침에 황하를 떠나, 저물어 흑산두에 묵는다.부모 애타는 소리 못 듣고, 연산 오랑캐 말굽소리 터벅터벅 만리나 변경 싸움터에 나서고, 나는 듯 관문과 산을 넘었다.삭북의..
성숙한 개발문화 정착이 어려운 이유 작년에도 슬쩍 링크시킨 글이 있는 전규현님의 블로그에 재미난 글이 올라왔습니다.소프트웨어 개발현장의 문제와 해결책에 대해 꾸준히 글을 쓰시는 진짜 전문갑니다.(이상한 건담 메타포나 흘리고 원사료에 모자이크나 하는 10대랑은 달라요) 오늘 올리신 글은 주어랑 목적어 몇 개만 바꿔도역사에 대한 글이 됩니다.뭐, 하나의 신기술이나 문화가 들어오면무슨 제식훈련하듯 착착 바뀌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석시시대 청동기가 들아오고, 청동시시대에 철기가 들어오고삼국시대에 중국에서 뭔가 들어오면 그걸로 일제히 바꾸고..무슨 문화가 쿼드코어 들어오니 전부 쿼드코어쓰고스마트폰 들어오니 개나소나 그것만 쳐다보는 현재와 동일시 해버려요.사실은 거기엔 매우 고통스런 수용과정이 있어야 ..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깁니다. 누구보고 이래라 저래라가 아니라 짐순이 스스로에게 일해라 절해라 하는 이야깁니다. 지난 달에 한국고대사학회의 교역사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마침 시간도 남고 해서(돈도 남아돌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한 구석자리 점거하고 앉아 듣는데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진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짐순이의 대갈통엔 응가, 아니 정치만 들어차서 대외관계는 오로지 클라우제비츠와 마키아벨리에 경도된 셈이라 (그렇다고 너는 클라우제비츠나 이태리 마선생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체중을 물어보는 것 이상으로 맛깔난 욕을 냠냠 드실수도..) 국내 정치의 연장선, 그리고 전쟁. 이게 19살 가시내의 머리 속을 가득채운 전붑니다. 일본을 오가며, 동아시아라는 틀에서 보려고 노력하지만 ..
신분의 벽 뛰어넘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난 印 청년의 사랑 수고스러우시겠지만 먼저 저 위의 신문기사를 보아주세요. 그리고 나서 이 질문을 던져봅니다.암행어사로 돌아온 이몽룡을 만난 춘향이는 백년해로 하고 잘 살았을까요?100분이라면 100분, 모두 한결같은 대답을 하실 껍니다.해피엔딩.가끔 사극에서도 신분을 넘나드는 사랑이야기가 나오고오늘도 소녀들은 백마 탄 왕자님을 꿈꿉니다.(그러지도 않는 짐순이는 마음이 사막과도 같아요.. 쩝)현재로 돌아오면 현 제1야당의 대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도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깁니다.이름만 대면 알만한 쁘띠회장님의 첫째 딸의 결혼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죠.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그와는 다릅니다.지금에야 계급사회에 살아가고 있지만그보다 더 갑갑한 신분제 사회의 틀에서는 ..
진흥왕 제 24대 진흥왕은 왕위에 올랐을 때 나이가 15세였으므로 태후가 섭정을 하였다. 태후는 법흥왕의 딸로서 입종 갈문왕의 비였다. 왕은 임종할 때에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운명했다. 승성 3년(553년) 9월에 백제의 조사가 진성을 침범하여 남녀 3만9천명과 말 3천 필을 빼앗아 갔다. 이보다 먼저 백제가 신라와 군사를 합하여 고구려를 치자고 하니 진흥왕이 말하기를 "나라가 흥하고 망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만약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 다면 내 어찌 고구려의 멸망을 바라겠느냐."하고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을 고구려에 전하니 고구려는 이 말에 감동이 되어서 신라와 평화롭게 지냈다. 이 때문에 백제가 신라를 원망하여 침범을 한 것이다. - 삼국유사 기이편 방금 전에 삼국유사를 그렇게 정치적 시..
사실 맨 처음 접한 역사책은 삼국유사였지요.물론 어린이용이었구요.중간에 강무학씨의 단군조선과 우리문화라는 책을 읽고약간 그쪽에 빠지기 시작했지만요.(나중에 환멸을 느끼긴 했지만 이야기 역사가 아닌역사연구? 역사해석? 이런 걸 처음 접하게 해준 건 정작 그 책이란 사실;;)뭐, 어린이용이 아닌 역사서로서 산 건 삼국유사보다 삼국사기가 먼접니다.문고판으로 나온 오래된 삼국사기 번역본을 손에 쥐었지요.이때는 한참 신채호에게 ㅎㅇㅎㅇ거리던 시절이라이 민족의 반역자 色姬가 어떤 개수작을 벌였는지 확인하기 위한검증도구로서의 성격이 강했습니다.그땐 정말 김부식은 이완용보다 더 나쁜 사람었다니까요..(어린 나이에 이 정도 변절이면 모 당의 새싹이 되어도 부족함이 없도다!!!!불사조따윈 병아리로 만들 어린 기세!!!) ..
금관총 큰칼 ‘이사지왕’ 명문 확인… 고분 주인 밝혀졌다 고려와 조선 이후 단일화된 권력만을 보고 자란 분들에게고대사에 권력구조를 이해시키기가 힘듭니다.언젠가 조선시대 후기 연구자이신 분과 대화하다 싸울 뻔 했던 적이 있는데생각해보니 그 분과 저의 개념 자체가 달라요.선조가 아무리 발광을 해대도 이순신이 택할 길은죽어라 충성을 바치거나 군대를 이끌고 서울로 쳐들어가는 길 밖에 없지요.충무공에게 던져진 카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중앙집권화가 상대적으로 늦은 유럽도프랑스왕에 대해 독자적 왕국 수립을 모색한 샤를 용담공같은 이도 있지만그의 시대 자체가 왕에게 납작 엎드릴 수 밖에 없었지요.그러나 한국의 고대는 다릅니다. 고대사에서의 국가는 일부 연구자들이 착각할 정도로 정연하지 않습니다.물론 일부 기록에 담겨..
어제 아는 분의 부친상이 있어 강릉에 다녀왔습니다.결혼식은 못가도 상가에는 간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는데다(물론 그것도 중요한 일정과 겹치면 못가지만요..)오랜 시간동안 알고지낸 분이어서 안갈 수는 없더군요.자정께 돌아와 기진맥진했다가 일어나칠지도 얘기나 해볼까 금석문책을 펴보다 생각이 나서 이걸로 갑니다.(그렇다! 짐순이는 지조때로 살아가는 19세 청순가련 병약미소녀였던 것이다!!) 1919년 부여의 부소산성 안의 사비루 근처에서 불상이 하나 발견됩니다.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부처를 보살 둘이 보좌하는 삼존불의 형태이지요.가운데 부처를 본존불, 양 옆의 보살들을 협시보살이라고 부르죠.(이른바 업계용어. 알아두시면 박물관에서 편합니다..)불상이야 전형적인 삼국시대 불상입니다.대개는 불상하면 대웅전이나 비..
80년대까지만해도 한일관계사를 바라보는 중심 시각은선진적인 한반도의 고대국가가 후진 일본에 문화를 전달해주었다는 겁니다.아니 일본이 우리보다 몇 수 아래에 있었던 상태라는 게 더 정확하겠군요.뭐, 재야사학에 이르러서는 아예 우리가 그들을 지배했다는,적어도 매우 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봅니다.그냥 왕인과 같은 이의 활약이 있었다고 보는 온건한 주장부터아예 식민지를 두고 지배했다는 (북한학자 김석형의) 극단론까지다양한 시각이 횡행했던 시댑니다. 또, 일본은 오래전부터 한반도로부터의 영향력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었습니다.적어도 일본인의 국가의식이 성장하는 메이지시대 이후지배의 상태에 놓인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사실은지배의 정당성을 역사에서도 찾으려는 것과 충동했었으니까요.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
2010년,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지금의 부여에서 목간 하나가 발견됩니다."벼슬자리 주십시오"..백제 편지목간 발견 所遣信來 以敬辱之 於此貧薄 一无所有 不得仕也 莫瞋好邪 荷陰之後 永日不忘그냥 귀찮으니 누군가 풀어놓은 번역문을 그대로 옮기자면보내주신 편지 삼가 잘 받았습니다. 이곳에 있는 이 몸은 빈궁하여 하나도 가진 게 없으며 벼슬도 얻지 못하고 있나이다. 그러나 좋고 나쁨에 대해서 화는 내지 말아주십시오. 음덕을 입은 후 영원히 잊지 않겠나이다.그 중에 於此貧薄 一无所有 不得仕也.. 요 문장이 끌리네요.여기에 빈궁하게(찌그러져 있다보니) 가진 것 하나 없고, 일도 얻지 못하였습니다..란 말. 왕조국가의 공무원수는 매우 적습니다.억단위 중국을 좌우하던 명청시대 중앙관리가 5만을 넘치 않았다고 들었..
성곽이 처음부터 그렇게 대단한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닙니다.뭐든지 처음부터 찬란한 건 없어요.(언젠가 써먹을 게 줄어들면 아껴둔 이 명제에 반하는 일 이야기를 할 껍니다만..지금은 거기까지 공부하기엔 짐순이의 귀차니즘은 숭고해욧!)처음부터 폼이나는 건 그다지 없었어요.오늘은 그 창세기랄까요.웅장한 성벽과 달리 창세기의 방어시설은 어떠하였는가를 이야기해봅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에겐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는 않습니다.애시당초 후대의 단단한 흙이나 돌, 그리고 벽돌로 쌓은 것과 달리창세기의 방어시설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왜냐하면 아주 부서지기 쉽거나 썩기 쉽거나구조가 간단하고 엉성하여 역사의 풍화작용에 의해 사라졌거나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여기에 대한 정보를 그다지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아요.한..
한국고대사학회 홈페이지에는 정기적으로 문화재 관련 소식 정리가 올라옵니다.각종 언론에서 다뤄진 고대사나 역사문화 관련 소식이 올라오지요.뭐 숭고한 귀차니즘을 가진 짐순이는 하나하나 검색치 아니하고,이걸 봅니다.우연히 1면에 걸리지 않는 한 사실 놓치는 기사도 종종 있지요. 눼, 귀차니즘은 숭고하다니까요.천하의 친정권님께서 휴머니즘보다 더 상위의 이상이라고 하시잖아요.맑시즘과 캐피탈리즘보다 더 위대하죠.김훈 선생도 인간은 놀아야 하는 동물이라는 말쌈도 하셨고.. 암튼, 오늘 낮에 올라온 소식 중에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높이도 모르면서 황룡사탑 복원한다?사실 이걸 복원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작년에 황룡사지에 갈 때만 해도 아무 것도 없었고,또 복원의 복자만 들어도 진절머리를 내는지라어쩌면 들었어도 자동 검..
며칠 전에 창해군을 가지고 아주 길고도 재미 없는 글을 연달아 뽑아냈었지요.한사군의 프로토타입, 창해군은 왜 만들어졌나..거기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彭吳穿穢貊ㆍ朝鮮, 置滄海郡, 則燕齊之間靡然發動.팽오가 예백과 조선(의 길을) 뚫어 창해군을 설치하니, 즉 연과 제의 사람들이 크게 동요하였다..(밑줄 친 부분은 이성규 선생님의 사기 편역에 의존했습니다.)이게 무슨 뜻인지 분명치 않아서 다른 기록이 없나 찾아보니그보다 앞서 나온 사기 평준서에서는 彭吳賈滅朝鮮, 置滄海之郡, 則燕齊之間靡然發動팽오가 조선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창해군을 설치하니,연과 제나라 사이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다..라고 되어 있습니다.(앞에서는 이성규 선생님의 사기를 인용하여 보니 뜻이 맞춰지는데정작 평준서의 이 대목은 김원중 선생님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