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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생각해보니 지난 주에 두가지 새로운 소식이 나왔는데19세 청순가련 병약미소녀의 취향에 따라 한 가지만 주목하고다른 하나는 내일 써먹어야지 해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것을 이제야 생각해 내었습니다.(그 하나는 고구려 비석의 발견이지요)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략 아는 얘기고여기를 통해 저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신 분들도 슬슬 눈치 채신 것이 하나 있을 겁니다.얘는 삼국유사 얘기 정말 안하는구나...뭐, 다들 창덕궁을 좋아한다고들 말하는데 혼자서만 경복궁이 법궁이니까 좋다고 말하는 아입니다.역사서도 정사를 더 중요시하다 못해 거의 그것만 보는심각한 편식가입니다.그래도 이 사실만큼은 다루었어야 하는 것입니다.국보급 삼국유사 왕력편 조선초기 판본 공개 - 연합뉴스 1월 15일자 현재 완본으로 존재하는 삼국사기,..
고구려사를 처음 공부를 시작하면서 했던 맹세가 있는데절대 광개토왕릉비에 대한 것은 건드리지 않는다..였습니다.100년의 광개토왕릉비에 대한 연구사만 추려도 책 몇 권이 나올 것이고세세하게 따지는 거 잘 못하고 큰 그림만 그리기 좋아하는19세 여아에게는 그야말로 베트남 정글로 M16 한 자루 들고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딱 한 번 비문을 통독해보고 다시는 안들쳐 봅니다.그냥 누가 지나가다 언급하면 그런갑다... 이러는 정도.그래서 이 글을 쓰는 걸 좀 주저했습니다.자세한 기사는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제2의 광개토대왕비'에 무슨 내용 새겨져 있나(연합뉴스 1월 16일 기사)처음 공개한 중국의 국가문물보의 기사는 여기 링크를 참조해주세요.듕궉 국가문물보 기사(1월 6일자 기사)단 듕궉 간체라 그냥..
중국고대사에서는 토지의 단위로 무畝라는 단어를 쓰더군요.지금 찾아본 무의 사전적 의미에서는 30평, 약 100제곱미터라고 하는군요.문제는 이런 단위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지라 감이 안옵니다.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농경지의 형태,즉 정방형이나 장방형에 가까운 농지의 단위가 아니라고 하더군요.소에게 쟁기를 끌게하는 농법이 생기면서정방형이나 장방형은 소가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 초기 운영상의 문제가 있어 아주 긴 세장방형의 농지형태를 가진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 한마리를 몰게 하여한 바퀴를 도는 거리.. 뭐 이런 식으로 설명을 들었습니다.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현재 쓰는 400미터 트랙이 아니라더 긴 트랙 한바퀴 도는 범위가 하나의 농사단위랄까요.. .여러분이 제 설명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처럼(뭐..
약간 오래전에 유인선 선생님의 베트남사를 읽으며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특히나 관심을 끄는 것이 몇몇 부분 있었습니다만그건 차차 풀어놓을 먹거리라 나중을 기약하고요.(어느 프랑스 역사학자가 노년에 먹을 빵은 남겨놓아야 한다고 했죠.풀메탈패닉에선 전사는 마지막 총알 하나는 남겨놔란 대사가 나왔구요)그 중에서도 제일 관심을 끄는 것이 남월이라는 나라의 존잽니다. 지금의 베트남이야 인도차이나반도 동쪽에 길게 늘어진 나라지만원래 그 종족은 현재 베트남의 북부, 그리고 중국남부에 넓게 분포했었습니다.춘추전국시대의 월도 이런 종족의 나라였지요.이 종족은 한대에는 동월, 민월이란 이름으로도 존재하다가삼국시대에는 손제리의 발목을 잡은 산월이기도 합니다.점점 중국이 남으로 영역을 확장함에 따라 인도차이나로 내려가고그 화..
고인돌은 한국의 선사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입니다.한반도의 고인돌은 전세계에 산재한 거석문화군 중에서 주목할만하 하나의 유형으로 자리잡았습니다.아시아에서는 고인돌이라는 유형의 대다수가 한반도에 위치합니다.지금 현재 남은 것만해도 북한 것까지 합하면 4만개라고 하는데어떤 연구에서만 전남지역에서 5만개라고도 하고 좀 애매합니다.그리고 특히나 근현대에 들어와 많이 파괴되었지요.실례로 양구의 고인돌 군락지에 간 적이 있었는데(아무래도 저는 프린세스 메이커에서 고고학자로 양육될 뻔했나 봅니다)거기 분들 말씀을 들어보니 원래 훨씬 더 많았는데땅끄저지선을 만든다고(그 동네를 다녀오신 분들은 알겁니다)큰 돌들을 다 끌어다가 시멘크 붓고 십리장성을 만들어버렸지요.그외에도 경지정리, 공단조성, 시가지와 도로 등으로 많이 날..
고구려를 구성하는 원래 씨앗 중 하나는 나라는 집단입니다.나? 我? I, my, Mine?자신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집단을 가리키는 고구려만의 어휘랄까요?저번에도 말했다 시피 고구려가 탄생한 지역은 산이 많습니다.산과 산줄기가 땅을 여로 조각으로 갈래갈래 나눠버리죠.아무래도 산과 산이 교통로를 막아버리기 때문에 이동은 제한적이고굳이 합쳐야할 필요가 생기지 않는 한 대부분의 시간을 고립적으로 보내기 딱 알맞은 환경이지요. 구글지도에서 가져온 고구려의 첫 수도 홀승골(오녀산성) 일대의 지형입니다.고전기 그리스에서 도시국가들이 하나의 국가로 합치지 못하고 항쟁만 거듭한 이유를 생각나게 하는 지형입니다.고대 그리스의 전쟁은 신 앞에서의 결투다 지형 얘기는 여기서 했으니 보실 분만 봐주시고요...
오늘 춘천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좀 조용히 가고잡던 짐순이는 일부러 2층을 골랐습니다.평일 2층은 좀 조용하거든요.그런데 가끔 뒷골잡는 날이 벌어집니다.오늘이 딱 그런 날.. 몇 명의 현명한척 하는 노인들이 고음역대의 소리로 자꾸 이상한 소리들을 난사하시더군요.대선에 대한 건 여기가 정치 블로거니 패쓰하고(근데 이기 노무현이 심판하자는 선거가????)춘천 음식이 어쩌구하는 소릴 듣고 뚜껑열려 일어나려던 건지역주민이라 주관적인 내용이라 패쓰하고..(그기 싫은디 춘천에 와~ 오는데???)듣다가 짜증난 이야기들 중 하나는 저번 포스팅 내용에 해당되는 미 상원보고서 이야기였습니다.대체 역사학자들은 뭐하고 있느냐는 말에 정말 자리 일어날뻔 했어요.(눼, 짐순이는 요즘 성격 순해졌네란 소릴 듣지..
오늘 아침 라디오를 들으며 밥을 먹는데 미 상원의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보고서에서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문구의 삽입을 유보한다는 뉴스가 나오더군요.(다만, 지금 다음과 네이뇬을 뒤져도 그 뉴스는 없습니다)동북아귀염역사재단에서 전문가를 파견하하고 여러 통로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한 덕이죠.또 민간 차원에서도 뭔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만이런 뉴스에 신경이 곤두서는 10대 후반의 걍박한 자아의 소유자로선애써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날은 필요할 때만 뽑는 거다.나름 질풍노도의 10대를 겪으며 얻은 결론입니다. -_-;;; 이게 단순히 남의 나라 역사를 개 뭣, 아니 홍어 생식기마냥 치부한 문제가 아닙니다.저들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라 한다면 그저 우리만 기분 나쁠 일입니다.(그렇다고 위동네 뽀글이 아..
오늘 올라온 그것은 알기 싫다 7회를 듣다보니 또 직업병이 도졌는데 금강산댐(북한식 명칭 : 임남댐)을 다루는 부분에서 살수대첩 수공 얘기가 나왔다. 결론만 먼저 이야기하자면 살수대첩 수공 그딴 거 없었다. 趙家之馬笑.. 아직도 한국고대사를 다룬 책에서 가끔 이 이야기를 발굴해내면 기운이 빠져버리는데 솔직히 매년 이 부분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반복되는 얘기를 하는 것도 지친다. 누가 처음 이야기한 것인지 약간 용의자들이 좁혀지지만 삼국사기나 중국정사에도 실려있지 않은 이야기들이 재생산되는 것을 볼 때마다 맘이 아프다. 이건 진행자들의 교양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국난극복사 교육이 근본적인 문제다. (니가 유형 팬이라서 실드치는 거 아니냐고 태클을 건다면 그날 꿈에 머리에 트윈테일이 달린 18미터 짜리 모빌..
고구리가 아니라 고구려라니깐! - 초록불님의 포스팅 오늘 그것은 알기 싫다 6회를 듣다가 이 블로그의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저같은 사람에게야 그저 고마우신 분이고, 일부 분들에게는 이가 갈릴 초록불님의 블로그,초록불의 잡학다식이 잠시 지나가듯 소개가 되었지요.고구려사의 간단한 정리를 쓰면서 한 번은 고구려를 어떻게 불려야 하나를 다루어야 하는데사실 이 분보다 더 잘쓸 수는 없습니다.그래서 고구려사의 간단한 정리 2 - 고구려의 국호에 대하여..를 쓸 적에약간은 편한 맘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저 포스팅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본 배경을 이야기하자면중국어에서의 한자음은 시대에 따라 달랐습니다.영어에서 중세 고지 스코틀랜드어, 중세 저지 스코틀랜드어.. 등으로 다른 것이 나오듯 말이죠.오래전부터 현재..
뭔가 ‘간다무’스런 제목이긴 합니다만한 국가의 건설을 이처럼 잘 납득할 수 있는 제목은 또 없습니다.자매품으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도 있는데이 두 말을 한 데 모으면 하나의 고대국가가 성장하는 국면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합니다.고대국가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정도를 넘어서 무식한 수준에 있느니만큼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습니다.필요하시다면 고대사를 다룬 개설서들을 읽어주세요.제 고대국가 형성에 대한 이해도란 것이 아래의 기념비적인 그림 이상 넘어가진 않습니다. 앞에서 고구려사의 기원이 한참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지만우선은 삼국사기의 기년에 따라 고구려의 건국과정을 이야기해보기로 하지요.이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7년에 부여에서 탈출한 주몽이 졸본지역으로 내려와고구려라는 나라..
본격적으로 고구려사 이야기를 함에 앞서서과연 어떤 토양에서 자랐길래 고구려가 그런 역사를 가지게 되었느냐는 이야기를 먼저해야 합니다.과거 제국주의 시절에 백인들이 자기들의 우월함을 환경결정론으로 수식을 했었죠.그것은 결국 피압박민의 역사에도 적용되어 이런 환경에서 컸으니 이 모양이라식민지배를 받는 게 앞으로의 역사에 도움된다는 ‘걸왕의 개가 짖는’ 소릴 했다지만역시나 역사적 진화에 있어서 환경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환경이야기를 함에 있어 과거 제국주의 합리화 논리가 아니라재레드 다이아먼드의 “총ㆍ균ㆍ쇠”처럼 ‘인간이 환경에서 거둘 수 있는 자원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왜냐하면 꼭 그 환경이라고 그렇게 흘러간다는 공식은 전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구려 건국기의 자연환경..
"온달과 온군해는 중앙아시아에서 왔다" 지배선 선생님이라면 모용씨의 연만 가지고 평생을 파신 분입니다.특히 국내에 몇 분 되지 않던 위진남북조시대 전공자시기도 합니다.(요즘은 좀 늘어난 것 같군요)이분의 연구는 4~5세기 고구려사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것이기도 합니다.아무래도 미천왕대부터 장수왕대까지 전연~북연까지 이르는 이 국가군國家群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나중에는 고선지에 대한 연구성과도 남겨주셨지요.특히 이 분야에 대한 책은 거의 없던 상황에서 매우 귀한 가치를 갖습니다.(당장 떠오르는 다른 자료래야 룩 콴텐의 유목민족제국사-민음사, 대우학술총서-에서 약간,수잔 휫필드의 실크로드 이야기-이산, 2001- 정도?)다만 '유럽문명의 아버지, 고선지'란 괴랄한 결론의 책도 있습니다만(탈..
지인들 중에는 역사학 전공자보다 고고학 전공자가 많습니다.석기랑 토기랑 뒹굴링도 오래 하고 그랬는데도(쿠라시나 카나 이전에 먼저 굴렀어요)매번 볼 때마다 외계문물을 보는 것 같습니다.고고학 논문은 아예 외계 문헌이라고 하죠.그래서 국가형성에서 이론 쪽은 좋아해도 세부 각론은 하나도 모릅니다.정말 모릅니다.이 간단한 정리를 기획하며 되도록 문헌사적 정리 위주로 가자고 했는데한 열 편이면 고구려사 글 나오겠지..라고 했는데아뿔싸!! 프랑스 비웃으며 베트남전 참전한 미국애들 심정이 딱 지금 이해됩니다.아무리 문헌사쪽 이야기만 하자고 해도 건국 환경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데문제는 정말 솔직하게 자연환경이라면 모를까 고고학적 환경은 하나도 모른다는 것!(내가 괜히 후기사 전공하는 게 아냐!!!!!) 다음 주쯤이면 ..
사실 가장 원초적인 종교의 형태 중 하나가 바로 무당의 존재입니다.무당에는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가 있습니다. 사회의 규모와 복잡성에 따라 간단한 사회는 세습무, 복잡한 사회는 강신무가 주를 이룬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세습무는 마을 동제의 제사진행자처럼 그때그때 임명됩니다.주로 집안의 가장이나 민속학 용어로 '시절이 맞아떨어지는' 사람이 맡습니다.아무 권한도 없고 신이한 능력도 없습니다.그저 그날 제례의 대표로 나와 초월적인 존재와 대화를 시도합니다. 우리가 무당하면 떠오르는 분들은 거의 강신무라고 합니다.말 그대로 신이 강림하여 신이한 능력을 받은 무당을 말하지요.이들은 전문적인 종교직능자로 특별한 신과의 감응에 의해 선정됩니다. 두어다리 건너 무당이 되신 분이 계신데그분도 멀쩡히 사회생..
고구려, 고려.처음에는 고구려高句麗라고 불리고, 대개의 경우 초기 문헌에서는 麗자에 부수 마馬가 더 붙은 高句驪로 불립니다.요건 한때 삐친 츤데레 왕망이 하구려라고 부른 것과 유사하게일부러 국호의 일부를 짐승이름 글자로 바꾸어 부르던 호칭입니다. 장수왕 대로 내려가면 가운데 구자가 사라진 고려高麗라는 이름으로 정착됩니다.네, 왕건이 건국한 그 고려라는 이름의 원전이기도 하죠.(그래서 고려사 전공 후배들을 지들 이름도 못지어 다른 나라 이름 배껴먹고그거 은폐하는 놈들이라고 갈굽니다. -_-;;;) 이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붙었는가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다만 B.C.E.107년에 현도군이 만들어지던 당시 지금의 집안 일대에 고구려현이 설치되었다는 것이죠.고조선의 멸망 이후 설치된 한군현..
한번 소개한 그림에 대한 땜빵포스팅입니다.(이건 역사적 사실입니다. 덜 중요한 거지만)요즘 그것은 알기 싫다로 갑자기 200명은 넘게 들어오고800명이란 1주일치 방문자가 하루에 몰리기도 했습니다만여전히 이 블로그는 "변방의 북소리"니만큼비록 여러 차례에 걸쳐 천천히 간다, 일희일비 안한다고 말했지만생불이 아닌 이상 신경쓰이는 건 사실입니다.(물론 남들의 반의 반도 안쓴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땜빵 포스팅하나 날립니다. (실은 오후에 원고용 자료를 이어폰과 함께 집에 두고 나갔습니다. 캬캬캬) 골품제의 한 단면에서 소개한 그림의 원전입니다.의외로 많은 책에서 이 그림을 사용합니다.그말인즉 이 문제에 한해서 이보다 더 좋은 표는 없다는 겁니다. 어지간한 책에는 가장 오래된 출처가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
요즘 역사신문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애들이나 선생님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데기존의 니들은 닥치고 들어~!(쉐릴 놈이 무대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던가)그런 수업보다 참여를 유도하는 수업이긴 합니다.뭐, 하루이틀 전에 나온 것도 아니고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저기서 시도해오던 것이긴 합니다.다만 요즘은 이런 식으로 해도 될 만큼 여건이 충족된달까? 그냥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 아이들은 잘 따라옵니다.아무래도 글자보다 사진이나 영상이 익숙한 데다이때는 글자 위주의 매체가 어렵긴 합니다.문제는 4~6차 교육과정을 거치며 밑줄 쫙~, 별표, 큰 문단, 작은 문단..에 익숙한 어른들이 문젭니다.사실 적응 못하는 게 당연하기는 한데 아이들의 감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해도저것을 만드는 과정..
고구려는 시기적으로 기원전 37년에 혼강유역의 환인지방에서 건국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광개토왕비에 적힌 왕대수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차이에 주목하며 200년 앞서서 건국했다는 것이 공식 견해입니다.또 중국기록에 고구려는 900년 된 나라라는 이야기도 나오지요.일부에서는 남한 학계는 식민사학 나부랭이라서 그딴 거 안믿는다고도 하지만(그에 대한 제 답변은 趙家之馬!입니다. 이놈의 19세는 욕도 잘해요~! 키랏!)아직 확실한 근거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서 북한처럼 단정짓지는 않습니다.다만 북한처럼 완전한 고구려의 형태냐 원초적인 고구려적인 상태냐에 대해 조심스러울 뿐입니다.기원전 75년에 이 지역에 머물던 현도군이 만주로 이동하는데이를 고구려 국가형성의 중요한 분기로 보는 것이 공통된 견해입니다. 우선 본격적인 건..
원래 남들이 가라하면 안갑니다.항상 연방의 폭죽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이 블로그 처음 만들 적에 이렇게 하면 좋습니다, 저렇게 하면 좋습니다.. 이런 말 들려오면 허생 앞에서 츤츤거리는 이완대장마냥이건 아니므니다, 저것도 아니므니다.. 모드로 일관하였지요.그래놓고는 한다는 게 사람들이 그리 선호하지 않을 삼국사기 이야깁니다.관심가진 사람들과 살다보면 그게 단줄 아는데실제 리얼충의 세상에서는 ‘삼국사기에는 관심없다’가 6할, ‘김부식=큐베’가 3할그래도 재미있게 봐주는 사람이 1할..이게 냉정한 평가라고 봅니다. 그중에서도 이제 지증왕 두 편을 제끼고 동천왕을 건드렸는데(사실 한 편은 박사논문 하나 읽어야 하는데 그거 읽다가 피토하면 누가 살려주나여)머리 속에 대략 얼개는 그려지지만 그래도 자료는 확실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