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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아주 오래전에는 이런 이야기도 했었다.한국사를 공부하다 중국사를 파게 되고 그러다보면 많은 사료와 대단함에 영혼을 빼앗겨그쪽으로 이사간다고.. 말이다.그런 이야기가 돌던 시절은 참으로 암울하여서70년대 이후로 국사교과서 논쟁은 끊이지 않았고조선일보는 민족정론지랍시고 열심히 학계를 깠고(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신문을 좋아한다;;)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은 국회에 가서 열라 깨지고그들의 발언은 왜곡되어 보도되어 또 까이는 시절이었다.(얼마전 국편위원장의 발언이 문제가 된 것도 좀 비슷한 것이그 분이 얼마나 식민사학에 이를 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친일 뉴라이트로 둔갑시켜 버리더라)일본은 우리가 건너가서 다 해놓은 거라는 이야기는 참으로 많이 나왔다.그리고 그때 이 책이 있었다. 책을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본 ..
평소에 수업을 할 때마다 마지막에 질문은 없냐고 묻고는 없으면아주 바람직하신 학생들이라고 말하곤 합니다.덕분에 정말 질문이 다음 시간에도 안나오는데 실은 질문에 답변 잘해줍니다.여기서도 질문이 적당히 나와주면 글 쓰기 귀찮은 날 잘 넘어갈 수 있을텐데 -_-;;; 모처럼 생각해볼만한 질문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과연 그 당시의 인식의 공유가 있었을 것이냐는 것이죠. 요약하자면요.우선 앞부분부터 답변하자면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이나고구려와 부여, 삼한의 동맹, 영고 등의 축제가 바로 그 역할을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집과 농지를 잃은 백성들에게물이 빠질 때까지 생계를 보장해주는 일종의 복지대책으로 쓰였죠.노예로 부려먹은 게 아니라 제대로 급료도 지급하고아픈 사람, 부상당한 ..
요즘 이것저것 자료를 정리하는 중에 나온 이야기를 하나 풀어볼까하는데요.(모자이크 음란삼국사기 언제 할꺼야!!!)1. 사회통합 수단으로서의 신화 – 신화는 초기 정치체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각각의 정치체들이 서로 통합과 분열을 일으키며 점차 대규모의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의 상처와 잡음을 완화시켜 주는 구실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통치자와 복속민의 유대관계 강화, 서열관계의 정비 등을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 될 때도 있다. 각종의 복잡한 사건들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또 정통성을 재확인해야할 필요성에 의해 모든 일들이 신화로 뭉뚱그려짐. 2. 신화에서 영웅의 시대로 – 점점 시대가 내려오면서 신적인 힘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기보다는 신의 후손이거나 선택을 받은 자가 신의 도움뿐만 아니라 자..
매번 고대 귀족들은 흔한 1%가 아니란 말을 해왔습니다만실제 수입에 대해선 알 수가 없었습니다.뭐,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기는 합니다.또한 이들은 자기 영지를 가지고 있습니다.그것은 입지와 면적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을 것입니다.그래서 그것은 뺍시다.이것이 얼마규모인지 알 수 없으나문무왕 9년(669)에 175곳의 목장을 배분하는데관청과 궁의 몫으로 32개소를 제하고 나머지를 귀족들에 돌립니다.그런데 이것을 관등으로 나타나는 지위에 따라 차이가 났습니다.김유신이 6개소, 왕의 동생인 김인문이 5개소를 받았고관등 순서에 따라 3개소, 2개소, 1개소.. 순서가 낮으면 받지 못했지요.이것이 당과의 대결에 대비해 군마를 양성하려는 정책에 따라 분배가 아닌 국역부담이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습니다만지금 중요한..
돌아가자! 전원이 장차 황폐해지려 하거늘 어찌 돌아가 않으리요?이제껏 내 마음 몸뚱이에 부림 받아 왔거늘, 어찌 낙담하여 홀로 슬퍼하는가?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았고, 다가 올 일은 올바로 할 수 있음을 알았으니,실로 길 잘못 들어 더 멀어지기 전에 지금이 옳고 어제가 글렀음을 깨달았네.배는 흔들흔들 가벼이 출렁이고, 바람은 표표히 옷자락을 날리네길가는 사람에게 갈 길 물으며 새벽 빛 흐림을 한하네.이내, 멀리 내 집을 바라보고는 기쁨에 달려가니,하인들이 반겨 맞아주고, 어린 자식들 문앞에서 기다리네.뜨락은 잡풀로 우거졌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하네.아이들 데리고 방에 들어가니 술통엔 술이 가득하네.술병과 술잔 가져다가 자작하면서 뜨락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기쁜 얼굴 짓고남창에 기대어 거리낌 없..
공주랑 결혼한 온달을 어떻게 볼거냐를 가지고 약간이기는 하지만여러 의견들이 있었습니다.하급귀족일 것이라는 설부터, 신진세력의 성장을 보여준다는 설 등이 있지요.온달이 6세기 후반 고구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생각은 각기 의견이 다른 분들 사이에서도 공통점입니다.(사실, 6세기에 이 정도의 소스가 나오는 고구려인 자체가 없습니다;;) 공주와 결혼하기 전이야 꽤나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 같은데정작 그가 어떤 신분인지는 명확한 게 없습니다.그래서 그가 왕에게 인정을 받은 후에 나오는 관등이 대형에 주목해봅니다. 가장 마지막의 모습을 담고 있는 신당서 고려전이나 한원 고려조에 따르면대형관등은 7등입니다.한원기록을 따르면 14관등 중 7등이니 딱 중간입니다.(이건 당의 침공 직전 고구려를 방문한..
이 글은 어설프군 YB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글입니다. 우선 전제할 것은 당시의 인구밀도와 개활지와 원시림의 비중입니다.간혹 고구려의 인구가 1천만이 넘는다는 분들도 계시지만(만약 오프라인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면“鳥島, 분유값도 없는 色姬, 무작정 싸지르면 되냐”는 말과 함께 조인트 날라갑니다)당시의 농업생산력은 고려치 않고 땅넓이랑 요즘 인구분포보고 하는 헛소리는만류원류고란 책에 실린 말, 폭군 걸왕의 개가 짖는 소립니다.하다못해 100년전에 1800만동포 2000만 동포라며 만세운동 했어요.지금요? 남한 인구만 5000만입니다.하물며 삼국시대에는 그 수확량이 높다는 쌀도 논이 아닌 밭농사로 지어먹던 시절인데요.무조건 만리장성만 쌓으면 된답디까?태어나자마자 다 굶어죽는거지.그래서 인구는 셀려고만 했다면..
그저께 올린 글에 달린 어설프군 YB님 댓글에 대한 답변같은 글을 올려봅니다.원래는 어제 올라왔어야 할 글인데예전에 투탄가멘과 혜공왕을 비교한 글이 있어서 약간 중복이라 좀 주저하다 올려봅니다.이 소스는 한국사 강의를 위해 만든 교재의 일부분입니다.(결국 자기복제~!!!!!)단문형식의 원 글을 약간 부드럽게 고치고 몇 부분은 추가했습니다.하나의 제도가, 생각이 자리잡는데 걸리는 시간이랄까요.그러한 것들이 정착되는데는 의외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대개 매우 위급한 상황이라 똥과 된장을 가릴 여유가 없을 때입니다.삼국통일전쟁기에 참으로 많은 사회적 변화가 생겨나는데 매우 급박한 상황이라 별 반대 없이 받아들여진 적이 많습니다. 1. 경덕왕의 왕권강화경덕왕은 왕권강화를 위해 귀족..
빈궁문답가- 야마노 우에노 오미 오쿠라/山上憶良 바람 섞어 비오는 밤의, 비 섞어 눈 오는 밤은 부질 없이 추워서 덩어리 소금 뜯어내어 조금씩 갉아 먹고 찌꺼기 술 마시면서 연거푸 기침하며 코를 노상 씰룩씰룩 엉성한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나를 제쳐 놓고는 이 세상의 사람다운 사람 없다 뽐내어도 보건마는, 너무나 추워서 삼이불 뒤집어쓰고 솜 없는 포견의를 있는대로 다 입어도, 이처럼 추운 밤인데 나보다도 가난한 사람의 부모는 배가 고파 떨고 있겠지. 처자들은 힘 없이 흐느끼며 울고 있겠지. 아아, 이러할 때 그대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 빈자의 물음 천지는 넓다 해도 나를 위해서는 좁아지고 말았던가. 일월이 밝다 해도 나를 위해서는 비춰 주시지 않는단 말인가. 누구나가 그러한가 나만이 그러한가. 좀처럼 태..
원래 한국사 교재를 위해 만든 자룝니다만고고학과는 담을 쌓은지 오래라서 고고학강의를 펴놓고 유적을 골라내고백지도에 붙여서 만들어보았습니다.이따금 고고학 이야기를 해서 고고학에 관심많은 블로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사실을 고고학과 담을 쌓은 역사는 꽤 오랩니다.덕분에 고고학 이야기를 들으면 거의 외계어로 들립니다.뭐, 고고학은 개뿔도 모르고그저19세 청순가련 병약미소녀란 사실만 알아주시면 고맙습니다. 흠흠흠... 요즘 다시 한국사 수업을 축약버전으로 수업하고 있습니다만총 40시간 짜리를 6시간에 돌파해야하는 상황이라PPT로 돌파해볼라는 꼼수를 부리느라 예전 자료를 검토중에 있습니다.뭐, 나선력이 있다면야 은하보다 더 커질 수도 있으므로 이 고생은 아니하겠지요.한국사는 내 가슴 속에 있어! 언제나 죽지 않..
예전에 삼국시대를 간단히 도표화한 그림을 보고 ㅎㅇㅎㅇ거린 적이 있었습니다. 삼국시대,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번주 수요일부터 3달 6강짜리의 간단한 한국사 수업을 하는데보통 매주 1회 4시간, 전체 10강으로 구성된 강의를격주 6회, 1시간짜리 수업으로 하려니 본의아니게 PPT를 이용한 강의가 필수가 되어버렸습니다.추석 연휴로 인해 2강인 고대사 부분은 바로 다음 주에 해야하는데본디 고대사부분 3강, 그러니까 12시간짜리를 1시간에 압축하려니 도저히 견적이 안나와서고대국가의 특징과 신분제를 중심으로 하는 수 밖에 없게 되었죠 그렇다고 중간에 삼국의 발전 이야기는 안할 수가 없어서 저 윗글에 소개한 그림을 넣으려다가 너무 번잡하기도 하고마침 네이뇬에서 작년엔가 배포한 양식 중에 쓸만한 게..
한참 전에 대학원은 다른과로 가서 박사를 받은 선배가고구려사를 전공하기로 했다하니민족의 영광을 위해…(이하 생략)… 이런 식의 이야기를 꺼냈다.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얘기라 짜증낼만도 했지만원체 순수하게 사는 양반이고, 또 나름 좋아하는 선배라 그냥 실실 웃고 넘어간 기억이 있다.어렷을 때는 환빠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오늘의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바르르 떠는 19세.요즘에야 많이 부드러워져서 그냥 넘어가는 일도 많지만민족의 영광을 위해 복무하라는 말을 들으면 그다지 기쁘지 아니하다.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이바닥 사람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정서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그닥 기억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지만1970년대는 민족사학 논란에 1980년대는 국사교과서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처음부터 말하자면 그리 말할 게 없었습니다. 진짜루~.동서울에서 10시 48분 차를 타고 가서 여유가 있겠거니 했는데마침 태풍이 오고 있었죠.그래서 10분 전에야 강릉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고겨우 시간에 턱걸이하듯 발굴현장에 도착했는데설명회는 어디서 하는지 설명이 없어 택시를 타고 몇 바퀴 돌았습니다.겨우겨우 연락이 되어 현장에 찾았는데 이번엔 택시가 자긴 카드 안되는 거라구 해서(물론 카드사용 표시를 보고 탔죠. 안붙은 건 한 대 보내고 탄 겁니다..)편의점에서 돈 찾아 와서 내고 올라가니 PPT설명은 끝나 있었습니다.원래 이 바닥이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많은지라 보통 5분정도는 알아서들 늦춰 시작하는데 말이죠.설명회장엔 들어가지 못하고 설명회장 입구에 늘어놓은 유물들만 봤습니다...
지금 이천을 지나고 있습니다. 태풍과 마주치고 왔어요.그래서 찍은 영상을 먼저 공개하기로 하죠.글과 사진은 밤에나 가능하겠습니다.요 영상은 발표회장에 나온 5~6세기 신라토기들이죠. 화면 후반에 유물을 만지는 손들이 나오는데 이 방면 전공자들이라할 수 있죠.일반적인 관객들은 아닙니다. 덕분에 삼국사기 읽기의 지증왕시리즈는 앞으로 이어집니다.그나저나 고속도로에서 와이브로 둏습니다. 캬캬캬 그런데 다음뷰 장애인지 지우고 다시 올려도 등록이 안되는군요.----이제 되는군요.일시적 장애였나봅니다.지금은(19시 현재) 광주를 지나고 있으니 글은 자정 이후 올라가지 싶네요.
최근들어 4국시대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가야사를 전공하시는 분들로부터 나온 용어인데그동안 가야사가 백제사나 신라사에 부속된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은 사실이다.(물론 90년대 이후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분명 80년대까진 그랬다)또는 고대한일관계사의 일부로만 보아왔던 적도 있다.(요건 일제 식민사학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건드리기 좀 애매하긴 했다.일본과 관련된, 일본의 사료를 읽는 것만으로도 뭔가 찜찜하던 시절도 있었다)적어도 현시점의 고대사연구자들은 가야사를 어디에 부속된 것으로 보질 않는다.가야사도 하나의 독립적인 분야로 보는 것이다.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야의 소국들이 고구려나 백제, 신라와 같이 놓일 수 있다고 보질 않는다.독자성은 있었고, 나름 하나의 진화과정을 보여주긴 했다.그..
오늘 서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그동안 1시간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그렇게 오긴 했습니다.(지금 현재 종로는 비가 그쳤군요)온도도 내려갔으니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데 한랭지사양 양산형 폭죽에겐이 날씨도 습도가 높아 지옥이긴 매한가집니다.더 괴로운 건 다들 살만하다고 하니 홀로 겪는 지옥이죠.오늘 오전의 이 날씨를 오사카나 나라, 교토에선 10월 말에 맛볼 수 있습니다.제작년 일본 여행에서 그걸 뼈저리게 절감했는데오늘 소개할 도쇼다이지 가던 날과 오늘의 날씨가 비슷했습니다. 원래 퇴근할 때도 그렇지만 여행할 때도 루트가 계속 바뀝니다. 기분에 따라, 그날 몸 상태나 거리의 인구밀도에 따라.. 그저 장애물을 만나면 방향을 트는 물이라고나 할까.이 날도 오전에 평성경 유적을 돌도 점심 때 ..
다들 환빠계열이 역사학과 상극인 건 아실테지만 진짜 상극인 학문은 고고학이다.그저 우직하게 환단고기의 기록으로 밀어붙이고중국정사나 삼국사기의 기록의 애매모호함을 공격하면어차피 평행선을 달리는 참호전이 벌어지는데(이 때의 싸움은 논리의 싸움에서 마치 종교간의 전쟁처럼 변하기 마련이다. 답이 안나온단 말이다)이 교착상태를 타개해버리는 게 바로 고고학이다. 그래 마크1같은 철갑괴물.그래서 환단고기를 번역해가며 29만원에게 아부를 한 임승국같은 이는고고학자들을 상상력이 없는 인간으로 치부하기도 한다.그가 뭐라고 부르던간에 고고학이 이쪽의 '최종병기 그녀'가 되는 건 사실이다. 김부식 무덤을 찾아내 그걸 파내 가루로 만들어 날려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던어느 연방의 폭죽도 처음엔 고고학에 대해 그리 좋게 보질 않았던 ..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민족의 영광 운운하는 말은 정말 싫다.전쟁과 관련된 공부를 하지만 국난극복사와 같은 영광의 수식어도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다.아주 옛날 환빠였던 시절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적어도 지금의 나는 러브 코메디 볼때처럼 그런 닭살돋는 이야기를 걸러내는 기관이 없다.그래서 조금은 냉정하다 못해 냉소적이기도 하다.(안그런다고 하신 분들은 연방의 폭죽의 이미지 메이킹에 속으신 거죠. 연방의 폭죽이 뿔단다고 3배 빨라지는 걸 바라는 게 낫지요. 데헷~) 그런데 그 우리역사 반만년이라는 유치찬란한 수사를 싫어하는 것과는 다르게그 반만년이라는 것에 고마워하는 마음도 있다.참으로 중국이라는 거대 블랙홀을 옆에 끼고 살면서도 잘도 살아남으셨군요..란 마음.(간혹가다 블랙홀 옆에서 잘도 살아남는 천체가..
수업 중에 세종대왕이나 한글을 이야기할 때드라마를 보지 않았음에도 세종은 한석규였고, 한글은 한석규와 신세경이 만든 글자라고 이야기 한다.그럼 사람들이 솔깃하게 듣는다.내가 아는 어느 영어강사는 맨날 황신혜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그 분의 윗 세대는 김추자 이야기를 많이했다나.나름 학원강사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수강생의 집중을 유도하는 흔한 기법이기도 하다.(정말 야구 외엔 TV를 보지 않는 RGM-79가 강의할 때 이런 건 잘써먹는다.그나마도 캔커피 30잔을 '쳐드신다'는 미친 감독이 미친 트레이드 한 후론 아예 안보니 이젠 정말 TV 안보는 거다. 그러나 인터넷에 워낙 많은 글들이 올라오니까 잠깐 훓어봐도 그럭저럭) 그런데 딱 세 장면만은 다운받아 보았는데바로 한석규가 '지랄'이란 욕설을 참 구수하게 ..
"한글 3천 년 전부터 사용됐다"먼저 기사를 읽어주세요.. 고백하자면 고딩시절의 RGM-79는 환빱니다.몇 몇 전공책은 고딩시절에 샀을 정도로 애시당초 싹수가 노란 아해긴 했는데어쩌다 산 환단고기를 말 그대로 너덜너덜하게 만들 정도로 읽었습니다.거기에 나오는 것 중 하나가 한글의 고대 창제설인데전두환때 최고의 아부를 보여준 번역자는 (비슷하게 생긴 그 분 맞습니다)세종실록의 '옛 전자를 참고하여'라는 대목부터 해서 이런저런 근거를 대서환단고기의 기록이 진실임을 증명하려고 했지요.고대사학회 홈피 들어갔다가 최근 문화재 관련 기사 정리게시물을 보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납니다. 정말 돈자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기사에 나오는 다른 그림은 정말 노자처럼 보이고요.그런데 이것이 정말 한글이냐에 대해서는 ..